국어사전에서 '논객(論客)'을 찾으면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이라고 풀이돼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설명으로는 그 단어가 지닌 의미 속성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예컨대, 어린이에게는 논객이란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소그룹으로 짝지어 토의하는 사람들도 논객이라 부르기 어렵다. 토론 도중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하는 사람도 논객 축에 끼지 못한다. 논객다운 논객은 그리 많지 않다.

"나더러 듣보잡이라고?"

진보와 보수 성향의 논객 둘의 논쟁이 인터넷에서 법정으로 옮아 갔다. '듣보잡'이라는 다소 민망한 말로 공격하다가 급기야 명예훼손 시비가 붙은 것이다. 하긴 인터넷 논객은 이처럼 자극적인 용어를 잘 사용해야 뜬다. 자유당 시절 '보호할 가치가 없는 정조'라는 판결이 있었는데,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이 자신의 명예는 보호받을 수 있을까 싶다.

인터넷상에는 듣보잡과 유사한 형태의 말이 많이 떠돈다. 지못미, 여병추, 흠좀무, 넘사벽….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줄인 말이 지못미이다. 앞에 열거된 말들도 이런 방식의 축약어이다. 언어 유희의 측면이 있다. 일부 의식 있는 이들은 웬 외계어냐며 못마땅해한다.

조어 형태가 약간 다르지만 남친, 여친 등도 비슷한 축약어다. '얼짱'이란 단어는 '얼굴'과 '짱'의 조합인데, '얼굴'을 '얼'로 줄일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축약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이 말이 일부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다.

우리말은 조어 능력이 약하다. 영어는 접두어나 접미어가 발달해서 그것을 이용해 새 용어를 만들기가 쉽지만 우리말은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트위터를 우리말로 바꾼 것이 댓글나눔터이고, 싱글맘을 바꾼 것은 홀보듬엄마이다. 조어법을 따르자면 이처럼 단어가 늘어진다. 이는 생명력이 약하다. 그렇다고 댓글나눔터를 '댓터'로, 홀보듬엄마를 '홀보마'로 바꾸면 흉흉한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런 조어법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니 사람들은 차라리 외국말을 쓴다. 외국말 홍수를 피하자면 '듣보잡'과 같은 조어법도 인정할 만하다. 이런 기발한 조어술을 살려야 우리말이 산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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