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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기석] 마지막 인간을 넘어

[삶의 향기―김기석] 마지막 인간을 넘어 기사의 사진

시인 김현승으로 하여금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라고 기도토록 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길가에 서 있는 벚나무에 한 점 두 점 가을빛이 내려앉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가을은 다채로운 빛깔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 신묘한 계절의 변화에 한눈 팔고 있는데, 문득 지나가는 30대 젊은이들이 나누는 골프 이야기가 귓전을 때린다. 아, 잘나가는 직장인들이 모이면 온통 골프 이야기뿐이라더니. "지금 한국 사회를 밀어가고 있는 힘은 중산층의 욕망"이라던 어느 학자의 말이 과장은 아닌 모양이다. 정치·문화·통일·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이들조차 경제 논리 앞에선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막스 베버는 '영혼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자'야말로 인간이 도달하게 될 마지막 지점이라며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과거에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화자찬할 것이라 했다. 그가 말하는 '마지막 인간'은 더 이상 '의미'에 대해 묻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의미를 먹고 산다는 현인들의 말씀이 무색해지는 시대다.

자본주의가 행복의 길이라며 우리 앞에 제시하는 길은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걸어갈 수 있다. 그 길은 은연중 배제 논리를 구사하며 사람을 가린다. 영문도 모른 채 그 길을 운명이려니 따르는 사람들은 늘 행복의 뒷모습만 보게 될 뿐이다. 유보된 행복은 부러움의 감정을 낳거나, 좌절 혹은 분노를 남긴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범용한 세계에서 몸을 빼내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중심으로 도약하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기꺼이 변방으로 간다. 교회 청년 둘이 분쟁 지역에 평화를 심는 일을 하기 위해 반다 아체와 동티모르로 떠났다. 그들로 하여금 다니던 좋은 직장을 버리고 고난의 현장에 가도록 한 힘은 무엇일까. 세상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결의였을 것이다. 수돗물도 나오지 않기에 우물물을 길어다 취사와 세면을 해야 하는 곳, 휴지조차 구비되지 않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외등 하나 없는 건물 건너편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곳, 도마뱀·거미·바퀴벌레·개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벌레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곳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갇혀 살다 보니 정말 즐겁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있었다"는 그들의 고백은 진실하다. 그들의 꿈은 소박하다. 담배와 대마초에 찌든 젊은이들의 몽롱한 눈에 열정의 빛이 돌아오도록 하는 것, 현지인들과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욕망의 터 위에 짓는 집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욕망은 초조감을, 초조감은 적대감을, 적대감은 폭력을 낳는다. 폭력은 자기 파괴와 외로움으로 귀착된다. 현인 노자는 '좋은 정치란 백성들로 하여금 생각은 텅 비게 하고, 배는 가득 채우게 하는 것'이라 했다. 물론 생각을 텅 비게 한다는 것은 삿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게 한다는 말이고, 배를 채운다는 말은 그 내면을 튼실하게 한다는 뜻이다.

오늘 우리를 생각해 본다. 욕망을 부추기면서 내면은 공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 감 빠른 사람들, 두길보기에 익숙한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안으로 거두어들임이 없으면 사람은 여물 수 없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뜨거운 태양을 삼킨 듯 붉게 물들어가는 감을 바라보며 영혼의 성숙을 생각해본다. 시대를 거슬러 근본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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