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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그 중의 제일은 국회의원이라

[백화종 칼럼] 그 중의 제일은 국회의원이라 기사의 사진

길을 막고 100사람에게 물어보자. 국회의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99명이 욕을 할 게 틀림없다. 다시 길을 막고 100사람에게 물어보자. 국회의원 시켜주면 안 하겠느냐고. 99명이 왜 안 하느냐고 반문할 게 틀림없다.

입 달린 사람이면 모두가 욕을 하면서도 자기는 하고 싶어하는 게 국회의원이다. 그래서 후보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되지만 선거 때만 되면 공천 받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당선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게 국회의원이다.

사표와 선거운동의 不調和

전에 대학 교수,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의원을 차례로 지낸 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해 본 것 중에 뭐가 제일 좋더냐고. 국회의원이라고 답했다. 왜냐니까, 큰소리만 치고 책임질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직업 중에 최고여서 모두들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국회의원을 마다하고 사표를 낸 이들이 있다. 민주당의 정세균, 천정배, 최문순, 이광재 의원이 그들이다. 정, 천, 최 세 의원은 지난 7월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한 데 항의하여, 이 의원은 박연차 사건에 연루돼서다. 이 의원의 경우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앞 세 의원이 사표를 낸 것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한계, 나아가서는 현 18대 국회의 존재 의의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의원직 사표를 낸 정세균 대표는 이번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켜 달라고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다른 의원도 이번 선거에 민주당을 훈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기들은 존재 의의에 한계를 느껴 떠난 국회에 자기 당 사람을 보내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거나 훈수하는 게 어째 앞뒤가 어긋나 보인다. 한나라당이 의원직 사퇴서 제출을 쇼라고 비아냥대는 소재의 하나다.

사표를 냈으나 처리되지 않아 신분이 어정쩡한 정 대표 등은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통과에 대한 판정을 지켜본 뒤 국회 복귀 여부를 결정한다는 복안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헌재가 무효 판정을 내린다면 이것이 얼마간 국회 복귀의 명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유효 판정을 내린다면 운신의 폭은 매우 좁아진다. 그보다도 사표 낼 때의 단호함에 비추어본다면 자신들의 거취를 헌재의 판정과 연결시킨다는 게 좀 궁색해 보인다. 따라서 결단코 사퇴할 뜻이 아니라면 민주당의 의석 확보를 위해 선거운동에 올인하는 연장선상에서 지금 복귀하는 게 명분과 논리의 일관성에 부합될 것 같다.

여당도 조롱만 할 수 없는 처지

이와 관련하여 김형오 국회의장은 며칠 전 "의원직 사퇴 문제에 분명한 정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그들이 사표가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감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다. 국회법은 의원이 사표를 내면 회기 중엔 본회의 표결로, 비회기 중엔 의장이 직권으로 처리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천정배 의원이 반박했듯 사표가 비회기 중에 제출됐기 때문에 법에 따라 의장이 처리하면 됐을 문제였다. 만일 정치적 문제로 그게 어려웠다면 다음 국회에서 의원직 사퇴를 정식 안건으로 표결 처리했으면 될 일이었다.

한나라당도 사표 제출이 쇼라고 조롱만 할 처지는 아니다. 그게 쇼라면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과반수 의석을 이용, 회기 중에 사퇴안을 가결시켜버렸으면 될 일이었다. 정치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면 부결 처리해 사표를 반려하든지.

국회라는 게 지금까지 대부분의 일에서 그래 왔지만 이번 의원직 사퇴 문제도 어느 한쪽만 탓할 수 없게 뒤죽박죽이다. "모두가 짜가(가짜)"라는 오래 전 유행가 가사를 연상시킨다. 국회의원이 좋은 이유엔 이처럼 사표를 내도 의원직이 유지되고, 무조건 상대방에게 삿대질만 하면 된다는 점도 추가돼야 할 것 같다. 이런 문제를 쾌도난마로 해소하는 방법은 어려울 게 없다. 의원직 사표를 내면 무조건 수리한다고 법 규정을 고치면 된다. 평안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랬다.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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