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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수몰 위기를 이겨낸 나무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수몰 위기를 이겨낸 나무 기사의 사진

칠백 년을 한 곳에서 살아온 큰 나무가 이사를 했다.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보호하던 경북 안동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 이야기다. 나무가 처음에 자리잡았던 곳은 마을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이곳에 임하댐이 건설되던 1993년, 수몰 위기에 처한 나무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적 수준의 옮겨심기 공사였다. 나무가 있던 자리 옆에 15m 높이로 작은 산을 쌓는 데에서부터 공사는 시작됐다. 인공 산이 완성되자, 키 31m의 이 은행나무를 옮겨심기 위해 뿌리째 들어올렸는데 그 무게가 무려 680t이나 됐다. 1990년 11월에 시작한 이식공사는 93년 7월까지 2년 9개월이 걸렸고, 공사비로 23억원이 소요됐다. 마을 사람들의 이주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였다.

주민들 사이에 불만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고마운 나무였기에 사람들의 왈가왈부는 금세 잦아들었다. 모든 불협화와 곡절을 가라앉히고, 불가능하게만 여겨지던 용계리 은행나무 이식 공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무는 건강하게 잘 살아, 가을이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단풍을 뽐내고 있다.

수몰 위기를 피해 살아남은 용계리 은행나무는 크기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훌륭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큰 나무의 보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남겼다는 점은 나무 그 자체의 존재가치보다 더 중요하지 싶다. 사람과 자연이 당당하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상징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험난한 공사를 우리 손으로 이뤄냈다는 점은 우리의 자존심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서 벌이는 충돌은 어쩔 수 없다. 숲으로 도로를 내거나 터널을 뚫는 건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도로를 내며 한가운데에 서 있는 큰 나무를 그대로 두거나 거꾸로 도로를 에돌려 내는 것들이 모두 그런 충돌의 하나다. 생존영역이 좁아진 멧돼지들이 도심에까지 출몰하는 것 역시 자연과 사람이 빚는 충돌의 한 증거다.

사람살이를 위해 댐을 지으면서도 애써 살려낸 한 그루의 은행나무. 이는 곧 사람에 의한 자연의 피해를 최소화한 중요한 상징이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잡고 살아온 나무를 지키는 일은 나무와 함께 사람이 더 오래 평화롭게 살기 위한 실마리임이 틀림없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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