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영준] 안전한 노후 위해 할 일 기사의 사진
전남 장성의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노인 환자와 직원 등 2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사고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안전 사각지대를 드러낸 듯해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다양한 원인 분석과 처방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 국민들의 의식에 내재돼 있는 만성적 안전불감증과 안전에 대한 투자를 소모성 비용으로만 생각해 가급적 아끼려는 시설 운영자들의 낡은 사고방식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미비한 소방 시설 및 장비, 부실한 관리·감독, 부족한 인력, 직원들의 응급상황 대처능력 미흡 등 대부분의 사고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이 이번에도 다시 확인됐다. 문제는 이러한 실태가 비단 이번에 사고가 난 노인요양병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2000년 초만 해도 50여개에 불과했던 노인요양병원은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정부의 노인요양병원 육성 정책에 힘입어 올해 4월 말 현재 20배 이상 늘어난 1284개에 달하고 있다. 그중에는 환자당 일당 정액제로 이뤄진 노인요양병원 수가보상체계를 이용해 더 많은 수익을 남기고자 인력이나 시설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해 운영하는 속칭 ‘사무장병원’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노인요양병원 가운데 최소한의 안전 기능을 갖추고 보건복지부의 공식 인증을 받은 기관은 230여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번에 화재가 난 장성 노인요양병원도 인증을 받은 기관이니 인증을 받지 않은 다른 기관들은 환자 안전에 더욱 취약한 상태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의사 1인당 평균 31명(최대 65명), 간호사 1인당 11.4명(최대 47명)의 중증 노인 환자를 돌보고 있으며 야간에는 더욱 열악한 상황인 대부분의 요양병원에서 환자 개개인의 요구나 안전에 대해 일일이 신경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며 이것이 화재, 낙상, 감염과 같은 안전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도 환자 확보를 위해 가격 덤핑을 하면서 부실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있어 안전에 더욱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노인요양병원 외에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4000여개의 요양원들은 수용인원 30명 이하 소규모 시설이 대부분이고 인증제도도 없어 화재나 사건·사고에 대한 대응이 더욱 미비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화재가 났다고 화재안전 기준과 점검을 강화하고, 건물이 붕괴되었다고 건물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식의 땜질식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기회에 환자 및 직원 안전과 관련된 모든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재정비하고, 현장에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상황에 대한 대응체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편으로 현재의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설치 기준 및 관리·감독체계, 보상제도, 인력공급체계 등이 환자 및 직원 안전을 보장하는 데 적합한지 심층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환자 및 직원 안전에 필요한 적정한 시설과 인력을 갖추지 못한 민간기관은 단계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 반면 우수한 기관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더욱 육성해 나가는 한편 수준 높은 공립요양병원 및 시설 확충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화재 외에 낙상, 감염, 욕창, 신체구속 등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들이 병원이나 시설의 인력 부족과 무신경, 가족의 무지 또는 고의적 방치 하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관심도는 낮은 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4무2탈(무낙상, 무냄새, 무신체구속, 무욕창, 탈기저귀, 탈침대)’이라는 노인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존엄 케어를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요양병원들도 있다. 이런 병원들은 널리 알리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안전과 관련해 큰 사건·사고만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는 소극적 대응책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누구나 노년의 삶을 안전하고 품격 있게 보내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영준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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