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참사 대책수립에 民이 배제돼서야 기사의 사진
“책임 있는 조직의 장들 문책하고, 진상규명·정부조직 개편 민간위원회에 맡겨야”

이럴 줄 알았다. 세월호가 속절없이 침몰한 지 49일째건만 구속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외에 많은 자·타칭 ‘죄인’들 가운데 아직까지 아무도 실질적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정홍원 총리만이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의 죗값을 뒤집어쓰고, 외상으로 ‘인책사퇴’를 받아놓은 셈이다. 일부 관료들과 비리 기업인 등 거악(巨惡)들은 여론과 권력층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훗날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공식적 처벌은 사법처리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정치행위로서 고위 공무원에 대한 징계성 인사는 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각 조직의 최고 결정권자와 관련 라인 간부들에 대한 문책 인사를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 사고의 직접 관련자 십수 명을 감옥에 넣는 것으로 이번 참사를 흐지부지하지 않겠다는 신호가 된다. 구조적 원인인 관·산 유착의 관행과 관련 조직에 대한 철저한 수술이 뒤따를 것이라는 최소한의 약속인 셈이다. 참사 이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관료들에게 너그러웠다. 관료들을 중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지간한 잘못이나 불법을 저질러도 대부분 경고만 하고 넘어갔다. 조만간 단행될 일괄 개각으로는 문책의 의미가 희석될 뿐이다.

또한 분명한 사고의 직간접적 원인과 단계별 경위 분석, 즉 진상 규명에 매진해야 한다. 철저한 진단이 있어야 정확한 처방이 나온다. 그렇지만 인상비평이나 ‘그러면 그렇지’ 수준의 질타만 난무할 뿐 구조적 원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그런 분석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없다. 물론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민간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나서야 한다. 그래야 결론으로 도출된 원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국회도 입법기관으로서 세월호 참사의 요인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들이 낸 결론은 불신을 면하기 어렵다.

박근혜정부는 대국민 홍보나 설득 및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넘기기에 급급할 뿐 원인 분석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전격적으로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해양수산부를 축소하며, 안전행정부의 안전 관련 업무와 인사·조직 업무 등을 신설되는 부처에 이관하는 등의 내용이다. 원인 진단이나 개편 방향의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개혁 대상인 정부가 추진한 ‘셀프’ 조직 개편에 불과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졸속 진단과 ‘셀프’ 처방의 한계는 며칠 가지 않아 드러났다. 19일 대통령 담화에서는 안행부에서 인사·조직·안전 기능을 떼어내기로 했지만, 8일 만인 27일 공개된 안에서는 조직 기능은 그대로 안행부에 두고 인사만 신설되는 인사혁신처로 넘기는 것으로 수정됐다. 참사에 책임이 큰 안행부와 일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고 한다.

정부조직 개편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정부조직 개편은 개혁의 본질이다. 그것은 안전과 규제완화, 복지와 성장지원 등 정책간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계각층과 민간 전문가들에게 맡겨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래의 비전에 대한 합의와 시대 변화상을 충분히 반영한 안을 만들어야 한다. 힘에 부치면 다음 정부로 과업을 넘겨도 된다. 관료사회의 기득권에 밀려 그리다 만 그림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니함만 못하다.

진상규명도, 정부조직 개편도 국회나 정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국민의 정서를 오도하거나 그에 편승하려는 집단도 조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희생자 가족, 그리고 그동안 소수세력이나마 사회의 한 축을 건전하게 떠받치며 성장해 온 독립적 전문가 집단과 시민사회가 주축이 돼야 한다. 누가 그런 사람을 골라야 하나. 각계각층의 양심적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새 총리가 민간 위원장이 주도하는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처음부터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1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좋다. 민간위원회가 진상규명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조직 개편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넘기면, 그때에는 관료집단을 포함시켜 끝장 대토론을 펼치도록 하자.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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