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이장원] “아버지 뭐 하시노?” 기사의 사진
“아버지 뭐 하시노?”

오래전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이 문제아를 향해 던진 대사다. 그런데 이 질문은 선생님이 학교 안 문제아를 다그치는 물음이 아니라 학교 밖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이상한 질문이다. 얼마 전 국내 초우량 은행이 인턴을 모집하면서 가족의 학력은 물론 최종학교 이름, 직장 내 직위를 쓰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부모만이 아니라 형제와 조부모까지 쓰라고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은행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독과점 기업일수록, 공적인 규제가 많은 사업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강하다. LG그룹이 올해부터 능력위주 채용을 위해 지원 서류에 가족관계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 큰 뉴스가 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황이 채용시장에 만연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공무원 사회에 대한 질타와 개혁 요구가 많아졌다. 자리를 지키는 데는 능한데 일에 있어서는 시키는 일이나 하고 솔선수범의 의기가 실종되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공무원끼리의 폐쇄적인 집단의식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민간으로부터의 충원을 대폭 늘리는 대신 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줄이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방향은 분명히 맞다. 이전부터도 노량진에 몰려 있는 수만 명의 청년 ‘공시족’들이 정상적인 상태라고 볼 수 없었기에 제도적 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히 맞다.

그러나 왜 그렇게들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 잘 살피지 않으면 대책이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안정적 신분, 후한 연금만을 지향하는 이기적 발상으로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아버지가 뭐 하시는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또 그런 배경과 관계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상이 얻어지는 일자리가 바로 공무원이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공직으로 몰려든다. 부모 덕 보지 않고 평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우수한 청년 인재들이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민간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도록 해주고, 민간 경험을 쌓은 이들을 나중에 공직사회에 수혈한다면 현재 폐쇄적인 공직사회도 신진대사가 지속되는 선순환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선순환의 전제조건은 민간과 공직이 상호 건강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진 가운데 교류하는 것이다. 만약에 일류 기업들이 공직이나 공공적 영역에 네트워크를 가진 인재만을 편식한다면 이들이 공직에 충원되더라도 역시 폐쇄적인 마피아 문화를 탈피할 수 없을 것임은 자명하다.

비단 신입사원 채용만이 아니라 좋은 경력을 갖춘 엘리트 충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연, 혈연, 학연을 배제하고 여러 부문을 고려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해 기반의 집단적 동질성이 가져다주는 위험과 갈등을 예방하는 길임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이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치권, 정부, 공공기관, 대기업 모두 중요한 자리는 연줄 없이 갈 수 없다는 자조적 의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공무원 선후배끼리 뒤를 봐주는 관행도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해서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는 크게 염치없는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데서 나온다.

과거의 연고를 매개로 계층을 이루는 사회는 신분사회이자 전통사회다. 우리가 살아야 할 사회는 성취와 기회의 사회이자 현대사회다. 우선 필요한 것부터 하자. 청년 자신이 가진 실력과 능력 외에 부모의 배경을 묻는 관행과 과도한 특정 학교 중심의 인재 선발에 대해서는 우선 공공기관부터 철저히 금지토록 하자. 민간 기업에 대해서도 이를 차별 및 불공정 행위로 간주하고 제재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일부 공직과 민간의 중요한 일자리에 가이드라인을 통한 성별, 지역별, 주요 학교별 할당을 포함한 통합적인 인적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단지 효율의 관점에서만 보고 무시해서는 안 될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원칙이다.

이장원(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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