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궁궐 밖 궁궐, 남한산성 행궁 기사의 사진
남한산성 행궁. 경기문화재단 제공
남한산성 안 작은 골짜기에 행궁이 아담하게 들어섰다. 행궁은 임금이 도성을 떠나서 머무는 임시 처소이다. 남한산 자락의 무성한 숲에 감싸 안긴 고즈넉한 행궁을 보면 몇 백년 전 왕조시대가 영상으로 재현된 느낌이다. 작지만 결코 어느 고을의 관청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근정전과 편전으로 활용했을 건물은 궁궐이 주는 위엄이 있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인조 4년(1626)에 세웠다. 전쟁이 일어날 때 임시 왕성의 기능을 갖도록 종묘와 사직 자리도 마련하였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47일간 지낸 인조는 결국 항전을 포기하였다. 청나라 군사가 산봉우리에 올라 쏜 대포가 행궁 기둥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로 인해 이 궁궐 밖 궁궐은 더 쓸쓸해 보인다.

청나라는 조선이 못미더워 남한산성 증축을 내내 경계했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광주유수를 성내에서 근무시키거나 군대를 배치해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숙종 이래 영조와 정조, 그리고 철종과 고종은 여주와 이천의 능행길에 찾아와 머무르기도 했다.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고 수비병이 사라지자 말 그대로 황성옛터가 되었다. 다행히 1892년에 부임한 프랑스 영사 ‘이폴리트 프랑뎅’의 사진 등을 근거로 2010년에 행궁을 복원하였다. 이달 말 카타르 도하의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예정이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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