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꼭 공평해야 하는가 기사의 사진
조금은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 지금처럼 ‘법’이 많았던 때가 없는 듯하다. 법이란 약자를 보호하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만드는 것이지만, 법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불법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듯하다. 공평과 평등을 위해 만드는 법이 불평등의 표상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국회에서 싸우는 여·야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하다. 내용은 늘 같다. 법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법대로 하자고 고함을 지른다. 2012년 5월 25일 공포된 ‘국회선진화법’을 1년 만에 다시 개정하자고 야단이다. 선진적으로 국회를 운영하자고 만든 법 때문에 후진화된 국회를 다시 고치자는 말이다. 가만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법을 만들 때와 적용할 때의 상황이 달라졌으니 맘에 드는 법을 다시 만들자는 이야기다.

구실 내세우기 위한 것 아닌지

아무리 법을 많이 만들어도 공평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공평’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법을 만드는 목적이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힘 있는 사람들의 맘에 들 때까지 만들어보자는 속내인 듯하다. 목사인 필자가 보기에, 교회에서 누군가 “법이요!”라고 들고 나오면 그 법이 그 교회를 허물고 있다는 증거다.

누군가 “공평하게 합시다!”라고 말한다면 사실 그 진의는 “내 마음에 들도록 합시다!”일 때가 많다.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노스 포인트’교회는 불신자들을 위한 목회로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 중 하나가 되었다. 담임목사인 앤디 스탠리의 책이 ‘본질은 깊고 영향력은 넓은 교회(Deep and Wide)’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아주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예수님은 공평성과 일관성이 없어 보이셨다. 나는 공평해지려고 애쓰는 교회들에서 일해 보았다. 결국 공평성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거두는 구실이 되었다. 일관성의 추구는 사람들을 돕지 않는 구실이 되었다. 머잖아 교회 지도자들은 ‘한 사람한테 해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해주어야 한다’는 논리 뒤에 숨었다.”

필자가 수년 전 NGO(비정부기구)를 시작하면서 고민한 것이 있다. 신생 단체의 작은 힘으로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다고 또 하나의 단체를 만드는가? 그때 읽었던 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라는 책이 답을 주었다. 어떻게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답은 이 땅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공평하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선행을 베풀고 있는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은 공평하게 일을 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있었지만 예수님은 모두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았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을 때 유독 삭개오라는 세리장의 집에서만 저녁식사를 하셨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났던 그 누군가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셨다.

은혜란 본래 공평하지 않다

예수님은 공평에 대한 문제보다 지금 내가 만난 사람에게 베풀어야 하는 사랑에 대하여 본을 보이셨을 뿐이다. 요즘 선행과 기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유명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의 말이다. “길을 가다 거지가 당신에게 돈을 달라 하면 아무 소리 말고 주십시오. 그는 지금 내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달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공평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법과 논리는 내가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일어나는 불공평한 일들이 이 세상을 은혜로 뒤엎고 하나님의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공평을 꿈꾸는 것이 허망한 일인가! 예수님은 전혀 공평하지 않은 방법으로 일하셨다. 그리고 은혜란 공평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삶을 통해 보이셨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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