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民心 읽기 기사의 사진
지방선거가 끝났다. 예외 없이 뻔한 레퍼토리도 들린다. 안도하는 여당과 청와대, 실망감이 짙은 야당 모두 논평을 내놓는다. “한 표 한 표에 담긴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청와대), “국민의 빈틈없는 균형감각에 감사하고 민심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새누리당), “선거 결과로 확인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각자 자리에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새정치민주연합)

선거 직후 참으로 많이 들었던 얘기들이다. 4년 전 6·2지방선거 때도 비슷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승리한 민주당은 “우리 국민 역시 무섭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2년 뒤 치러진 4·11총선 때는 입장이 바뀌었을 뿐 논평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승리한 새누리당은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했고, 참패한 민주당은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논평했다. 8개월 후 대선 때 나온 양측의 한마디도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첫 여성 대통령에 오르게된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 마음의 승리로 이를 잊지 않겠다”고 했고, 패배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국민의 열망을 이루지 못했다”며 쓸쓸히 퇴장했다. 모두 ‘국민의 뜻’, 민심(民心)을 말했다. 그리고 그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국민 뜻이 무섭다는 그럴듯한 수사(修辭)까지 넣어가면서. 그럴 때마다 국민들은 정치인이 좀 달라지겠구나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잠시라도 가졌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번번이 산산조각나곤 했다. 몇 개월 못 가 여야는 또 정쟁을 일삼았다. 선거는 끝났고 자신들이 ‘을(乙)’에서 ‘슈퍼 갑(甲)’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하듯이 말이다. 선거 때 읊조렸던 국민을 향한 경외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2012년 12월 20일 새벽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민들 앞에서 이렇게 밝혔다.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열망이 가져온 국민 마음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실천하는 민생 대통령으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 취임 1년3개월여가 흐른 지금 어떤가. 국민은 행복하고 그런 시대는 열린 것인가.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은 슬픔에 잠겨 있다. ‘국민통합 100%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통합은 고사하고 지역·이념·계층·세대 간 소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모두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民(백성 민)’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民자에는 크게 ‘하늘’과 ‘노예’라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고 한다. 유교 경전 오경(五經) 중 하나인 ‘서경(書經)’은 백성을 하늘로 보고 있다. “하늘은 우리 백성들의 눈을 통해 보고, 하늘은 우리 백성들의 귀를 통해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위정자가 백성을 하늘처럼 위하고 어여삐 여기면 民은 그 진심을 보고 오랫동안 위정자 곁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면에 중화민국 초기 계몽사상가였던 량치차오(梁啓超)는 “民은 눈이 칼붙이에 찔린 모양으로 노예의 총칭이지만 정치 지도자를 주시하는 다수의 사람들, 즉 백성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역설했다. 위정자가 백성을 노예로만 생각해 무시할 경우 民은 이를 예의 주시하다 결국 등을 돌린다고 부연하고 있다.

6·4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지 않았다. 여야 모두에 냉엄한 민심의 회초리를 들이댔다. 이처럼 민심은 변덕스럽지만 참으로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투표로 드러난 국민의 뜻을 어떻게 수용하느냐는 정치인들의 몫이다. 민심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 또한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국민을 하늘로 보고 겸허히 받드느냐, 아니면 노예로 보고 업신여기느냐도 정치인 마음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극과 극일 것이다. 선거 후 앵무새처럼 지저귀는 ‘민심에 대한 겸허한 다짐’이 이번에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었으면 한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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