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권위주의의 균열을 기대하다 기사의 사진
6·4지방선거의 막이 내렸다. 눈에 띄는 것이 교육감과 광역자치단체장 선출 사이의 괴리다. 17개 시·도의 교육감 중 진보 성향 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되었다. 말 그대로 진보 진영의 압승이다.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 9곳으로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한 것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각성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승리는 후보 단일화의 결과로 인한 어부지리의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비극 이후의 민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감 선거뿐만 아니라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40대 여성들이 진보 쪽에 몰표를 던졌다고 하는 통계가 나왔다. 그동안 중·고생 자녀를 두고 있는 40대 엄마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보수지지 계층으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생명과 안전이 경제논리나 무책임한 권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마음의 움직임이 진보 진영에 몰표를 던지는 현상으로 표출되었다. 사실 몰표냐 아니냐는 전혀 본질이 아니다.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권력이나 경제논리는 무용지물을 넘어 ‘악’이라는 것이 각성의 본질이리라.

그제 신문에서 중학생 딸을 둔 어떤 엄마의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그의 딸은 학교 토론 수업에서 ‘가만히 있는 게 모범생은 아니다’라는 주제로 발제문을 준비해 갔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세월호 안에 있다가 참사를 당한 죄 없는 영혼들을 위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딸아이는 ‘어른들의 말과 권위를 무조건 따르기보다 옳고 그름을 내가 직접 따져본 후 독자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발표했겠다. 어른들 견해의 진위를 합리적으로 확인해 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미는 아이들의 심정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어리다고 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옳고 그름은 나이가 많고 적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장유유서 오용 바로잡아야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루터대학에서 가르친 말테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독일인이지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한다. 말테 교수는 역동성을 한국사회의 커다란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독일사회와 비교하여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 장벽이 너무나 높아 발전이 지체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가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목이 마르면 약자인 어린이에게 먼저 물을 주고 강자인 어른이 나중에 마셔야지 위아래를 따지면 되겠는가.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면(마 10:42) 그런 우스갯소리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박원순씨의 서울시장 재선도 이런 측면에서 해석하고 싶다.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은 채 가방을 등에 메고 현장을 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작은 자를 섬기려는 의지와 열의를 읽었을 것이다.

내가 관여하는 어떤 학회의 회장 선출 방식이 기이하다. 나이 많은 순으로 회장을 차례대로 한다. 몇 년 전에는 학회에 나오지 않는 자에게 회장을 맡아 달라고 청했다가 거절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장유유서의 전통이 타인에 대한 배려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도 선거로 뽑는 나라에서 나이순대로 회장을 해야 한다니 스스로 노예의 멍에를 메는 꼴이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막 10:31).

유일한 권위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이다. 유일한 소리가 있다면 인간 이성에 참과 거짓으로 호소하는 그리스도의 소리이다. 그 이외의 권위와 소리는 그림자일 뿐이다.

남성현 한영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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