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계동]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의 조건 기사의 사진
냉전이 시작된 이후 세계 지도자들은 극한적인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했고, 이에 따라 ‘안보협력’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우호국들이 뭉쳐서 적의 공격을 억지하거나 격퇴하는 ‘동맹’과 달리 ‘안보협력’은 적국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뢰와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면서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것이다. 유럽의 다자안보 협력체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유럽의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자 동북아에서도 이러한 협력체를 조직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냉전 시작 이후 동서로 분열되어 대립하던 유럽은 1975년에 창설된 CSCE를 중심으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안정과 평화공존을 이룩할 수 있었다. CSCE가 냉전 종식에 큰 기여를 하게 됨에 따라 1993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상설기구화하였다. 유럽의 성공 사례에 힘입어 1989년의 세계 냉전 종식을 전후해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 설립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후 동북아 국가들의 안보대화를 위한 비공식적인 다자 기구들이 탄생했으나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 명분만 남게 되었다.

다자안보 협력체는 세계와 지역의 평화를 수립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지만 동북아에서도 이 같은 제도가 설립되고 존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첫째, 1970년대 유럽에서의 대립은 동·서유럽 간의 단순한 대립이었지만 동북아의 경우 다양한 이념과 이익이 상충하는 복합적인 대립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 문제에 대한 갈등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방식을 구현해야 하는데 유럽식 다자안보 협력으로는 풀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둘째, 유럽 내에는 두 개의 대규모 동맹체만이 존재했지만 동북아에는 다양한 양자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을 포괄하는 다자안보 협력체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미국, 미국·일본 동맹과 더불어 중국·북한의 동맹이 존속되고 있으며, 러시아와 북한은 동맹 조항은 삭제했지만 신우호조약을 기본으로 하여 연결돼 있다. 이러한 양자 동맹관계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다자안보 협력체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셋째, 동북아 다자안보를 주도할 국가들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협력보다는 지역 패권경쟁에 몰두해 있고, 동북아 국가가 아닌 미국도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 맺은 두 개의 동맹 및 군사 주둔을 축으로 해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제고하고 있는데, 다자안보 협력에 의하여 이 지역에 안정과 평화가 정착된다면 양 동맹의 가치와 의미가 퇴색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동북아 국가들의 긴밀한 안보협력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동북아의 지리적인 축인 남북한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주변 4강은 남한 또는 북한, 아니면 남북한 모두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남북한은 동북아 국가들의 연결축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핵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된 6자회담이다. 별로 반길 만한 이슈는 아니지만 동북아 6개국이 모여 장기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시도한 첫 번째 사례다.

일부 논자들은 6자회담에 의해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면 이 회담을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체로 발전시키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당장 동북아에 평화가 오고 다자안보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남북한 관계가 개선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은 핵 문제 해결에 그치지 말고 개방의 길로 들어가야 하고, 남한은 북한이 개방하면서 국제사회에 등장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김계동 연세대 국가관리硏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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