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지역주의 균열이 보인다 기사의 사진
벽은 견고했다. 6·4지방선거에서도 지역주의는 맹위를 떨쳤다. 부산·대구시장 선거에서 친야 성향의 무소속 오거돈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의미 있는 선전을 했지만 영남의 ‘적색(새누리당 상징색)벨트’를 넘지 못했다. 호남의 ‘청색(새정치민주연합 상징색)벨트’는 영남 적색벨트보다 더 두터웠다.

영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깃발을 들고, 호남에서 새누리당 간판을 걸고 하는 활동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비유된다. 김 후보는 당선을 예상하고 출마했는지 몰라도 그의 당선을 예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는 선거가 끝난 뒤 외려 여론의 조명을 더 받고 있다. 다수가 무모하다고 한 그의 도전을 통해 공고한 지역주의에 균열이 생기는 희망의 조짐을 보았기 때문일 게다.

자신을 3선 국회의원으로 키운 군포를 떠나 홀연 대구로 내려간 김부겸, 장밋빛 종로를 버리고 가시밭길 부산을 선택한 ‘바보 노무현’을 닮았다. 그는 유세기간 “사람은 괜찮은데 당이 싫다” “무소속으로 나왔으면 찍어줄 텐데…”라는 얘기를 무수히 들었다고 한다. 그도 부산의 오 후보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면 더 많은 표를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당적을 버리지 않았다. 노무현식 정공법이다. ‘노무현의 적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경남지사 선거와 18대 총선 당시 대구에서 깃발을 내리고 우회로를 택한 김두관, 유시민과는 달랐다.

지역주의는 1당 지배와 동의이음어다. 1당 지배는 절대 권력으로 이어지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는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룬다. 다른 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지역주의가 뿌리 깊게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선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묻지마 투표가 내 고장을 위한 게 아니고 해가 되어 돌아오는 부메랑 효과를 수없이 겪었으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지역주의 망령은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불가사의다.

그래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는 표면적으로나마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늉이라도 했다. 영남 대통령-호남 총리, 호남 대통령-영남 총리 식으로 요직 안배를 통해 지역주의를 완화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선 그나마도 없다. ‘100% 대한민국’은 ‘100% 특정 지역’이 돼 버렸다. 필요한 인재는 출신지역에 상관없이 등용하고 선택하는 게 맞다. 출신지가 걸림돌이 된다면 역차별이다. 다만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출신지가 등용이나 선택의 가산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지역주의 극복은 단시일 내에 이룰 수 없는 지난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유권자 이성에 호소한다고 해서 쉽게 풀릴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2년 후에 있을 20대 총선부터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제나 석패율제도 등을 도입해 영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깃발을 들고도 정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영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약간의 기득권을 포기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다음 달 30일 치러지는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나설 요량이면 광주로 가라고 권하고 싶다. 지난 총선 때 광주에서 40% 가까운 표를 받은 그다. 새누리당 정치인이 광주에서 그 정도 지지를 받았다는 건 기적이라 할 만하다. 박 대통령 핵심측근으로 비례대표 의원에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중진이라면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호남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부산지역 기초의원 182명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 66명(36%)이다. 북구의회는 새정치민주연합이 1당이다. 호남에서도 이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야 한다. 지역주의를 깨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바보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두드려야 문이 열린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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