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문 총리 후보자의 말법 기사의 사진
“한국 교회가 지닌 가장 흥미 있는 양상의 하나는 애국심이다. 우리의 연안선은 어느 주일 아침 늦게 북쪽 땅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강 언덕 마을로 눈을 돌렸다. 대나무 끝에서 조그만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 깃발들은 기독교인들의 집이나 교회 위에 휘날리고 있었다. 주일이면 그들의 집이나 교회 위에 국기를 단다는 것은 선교사들의 아무런 지시도 없이 한국 기독교인 사이에 일어난 실천이었다.”(미셔너리 헤럴드·1898년 3월)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거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다.”(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2011년 한 교회 강연 중)

위 사례는 각기 글말과 입말의 단면이다. 한데 이 단면만 놓고 독자 및 청중이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글말은 자부심을 느끼는 반면 입말은 수치로 다가든다. 1884년 선교사들에 의한 조선 복음화가 본격화된 후에도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제강점기, 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가 지금도 계속된다.

크리스천끼린 이해되는 얘기

우리가 밥그릇에 숟가락 마음껏 가져간 것이 1980년대 말쯤이다. 개신교 전래 100여년 만에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교육제도와 의료기술이 민족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성장한 대한민국은 2013년 현재 2만5000여명의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파송된 선교사들이 다 아는 얘기가 있다. 가난한 나라 선교지의 백성이 게으르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선교사 누구도 그 백성이 “게을러 터졌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억압’으로 비롯된 그 나라 역사와 문화를 알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에겐 그저 손 내밀 하나님 백성일 뿐이다. 문 후보자는 자신의 얘기가 왜곡되어 억울할 것이다. 전체 문맥을 이해하지 않고 앞뒤 싹 잘라 나쁜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항변을 이해한다. ‘게으른 조선 민족’이란 말의 배경은 이렇다. “농사 열심히 지어 뭐가 좀 생기면 (그것을 뺏으려고 이방이)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거다. 집에 쌀이라도 한두 말 있으면 다 뺏긴다는 거다…암만 노력해봐야 나에게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게을러지는 거다.”

더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그는 이 얘기를 하면서 경기도 양평 관아 이방만 800명이란 수치를 제시하며 권력 수탈을 애기했다. 또 다른 공격 빌미가 됐던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게 해주셨다. 지금 와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크리스천끼리는 충분히 이해되는 언어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큰 뜻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랬다면 말이다.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은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이로서 대과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장로로서, 총리로서의 발언이라면 국민이 수치를 느낀다. 그의 언어가 하나의 이치로서 민족을 꿰뚫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앙의 신념’이 아닌 ‘신념의 신앙’ 자세로 복음을 빌려다 쓰는 바람에 화를 불렀다.

예수의 복음은 가난으로 인해 비인간화된 상태로부터의 벗어남, 억압으로부터의 벗어남, 무지로부터의 벗어남이다. 한데 문 후보자가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백성 탓”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성서적이냐는 것이다. 언어의 파편을 꿰면 이치가 나오는데 문 후보자의 이치가 편협적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탓하지 말고 더 엎드려 용서를 구할 일이다.

전정희 종교국 선임기자 jhje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