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가구공룡 이케아와 젠더 기사의 사진
고래가 싸우면 새우등이 터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싶다. ‘가구 공룡’으로 불리는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의 국내 시장 진출이 확정되자 국내 토종 가구 업체들은 슬금슬금 가격을 내렸고, 서비스도 강화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진 데다 합리적인 가격에 가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창립한 지 72년 된 이케아는 지난해 전 세계 42개국 345개 매장에서 44조5000억원어치를 팔았다. 국내 가구업체 1위인 한샘의 지난해 매출이 1조69억원이니 그 덩치를 짐작할 수 있다. 국내 가구 시장에서 이케아와 토종 브랜드들의 힘겨루기는 마치 건장한 사내와 어린 아이의 싸움 같아 보인다. 약자를 돕겠다는 공명심에 애국심까지 곁들여져선지 언론은 드러내놓고 이케아를 꼬집고 있다. 경기도 광명에 1호 매장을 마련한 이케아가 그 주변 소상공인과의 상생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는다. 또 세계 1, 2위 유통업체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한국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던 얘기를 꺼내면서 “너희도 그럴지 모르니 알아서 잘하라”고 을러대기도 한다.

상생의 문제는 사실 좀 낯간지럽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같이 살리겠다며 출발한 동반성장위원회가 드러내놓고 대기업 편을 들고 있지 않나. 엊그제 동반위는 대기업의 의견을 대폭 반영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나는 게걸음을 걸으면서 너는 똑바로 걸으라는 격이니 남사스럽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성을 내세우는 이케아는 소비자들이 매장에 가서 물건을 고른 다음 운반해와 직접 조립도 하는 DIY 제품이 주류다. 남성들이 팔을 걷어붙이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 DIY는 바지런한 주부들의 취미활동에 가깝다. 이케아코리아는 한국의 이런 사정을 감안해 원하면 운반과 조립을 해주긴 하되 별도 비용을 받기로 했으니 가격 경쟁력이 크게 있을 성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구업계에 타격을 줄 게 뻔해 마뜩잖기만 했던 이 가구 공룡에 대해 얼마 전 기대가 생겼다. 지난달 28일 이케아 제품을 일반인들에게 선보이는 전시인 ‘헤이홈! 마이홈!’ 오픈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그날 주최 측이 이케아를 소개하면서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직원 채용 때 다양성을 중시한다는 것이었다. 나이, 학력, 그리고 성별에 관계없이 직원을 뽑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케아의 여성 직원 비율은 53%이고, 여성 리더의 비율도 47%라고 밝혔다. 여기서 퀴즈 하나. 성별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섹스(Sex)’? 아니다. ‘젠더(Gender)’라고 했다. 지금 “그게 뭐야?”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면 성 평등 의식은 낙제점이다.

성(性)을 남녀차별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 생물학적 의미의 섹스 대신 대등한 남녀 관계를 내포하는 사회적 의미의 젠더를 쓰기로 결정한 것은 1995년이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여성대회 GO(정부기구) 회의에서였다. 벌써 20년 가까이 됐지만 우리나라에서 젠더는 여전히 낯설다. 이케아코리아가 기업에서의 남녀평등 실현이 실질적인 이윤 창출로 이어진다는 사례를 보여준다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훨씬 클 것이다. 가구 시장의 한 귀퉁이를 내어주는 대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필수인 여성인력 활용의 효용성을 깨닫게 되는 것 아닌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 증가와 경력 단절 방지를 통해 국가의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위미노믹스(Womenomics) 시대다.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싶다면 CEO가 몸소 신입사원 채용 때 여성 지원자를 걸러내는 ‘참 나쁜’ 그물망은 없는지, 유능한 여성 인재의 승진을 막는 유리천장은 없는지 점검해보시길.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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