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과연 善인가… 입양, 그 불편한 진실 기사의 사진
아기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입양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생모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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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

한국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선 미혼 여성이 임신하는 경우 96%가 낙태를 선택하고, 3%는 입양을 시키고, 1%만이 직접 키우는 것으로 보건복지부는 집계하고 있다.

미국의 탐사 전문기자가 해외 입양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 이 책은 8장에서 한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미혼모 문제를 거론한다. 출산을 결심한 미혼모들은 일단 주변의 눈을 피해 ‘쉼터’를 찾는다. 이 곳에 처음 들어올 때는 대부분 아이를 기를 결심이지만, “의사나 교사가 부모로 있는 훌륭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 대학까지 갈 수 있다”는 입양기관의 끈질긴 설득에 갈등한다.

미혼모가 입양에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을 하면 입양기관 사람들은 대개 발길을 뚝 끊는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아기를 낳고 나면 병원에서는 미혼모에게 젖먹이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아기와 같이 있지도 못하게 한다. 아기를 보낸 산모에게는 “아이를 내버렸다”는 죄책감만 남겨진다.

제도적인 모순은 더 큰 문제다. 미혼모가 아기를 기르면 매달 5만원에서 15만원 정도 지원을 받지만, 아이를 임시로 위탁 받아 기르는 가정에는 40만∼50만원이 간다. 고아원 어린이 1명에게는 105만원이 지원된다.

더 낯선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외 입양은 6·25전쟁 뒤 외국 병사와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외자나 전쟁고아들을 ‘큰 나무가 서 있는 이층집 앞의 금발 머리 부모’에게 보내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해외입양이 가장 많이 이뤄진 시기는 1980년대다. 6·25전쟁 이후 현재까지 해외에 입양된 사례는 16만명인데, 80년대에만 무려 6만명의 아기가 태평양을 건넜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가 국제 입양기관들과 공생관계라고 지적한다. 여성의 달라진 현실을 무시하면서 거기에 들어갈 비용을 외부에 전가해버리는 것이 한국에서 입양이 지속되는 이유라면, 입양기관은 거기서 얻는 이윤과 수수료 수입이라는 금전적인 인센티브 때문에 이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이런 문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충실하게 기록했다.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과 숨죽여 살아왔던 미혼모들이 이들을 돕는 시민운동가와 힘을 모아 사회의 부정적 인식, 입양 제도의 허점,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입양인의 귀향을 막는 장애물을 하나씩 허물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도 그 한 사례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책의 앞부분에서 거론하는 입양아 수출국인 아프리카·중남미 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모범사례로 한국을 비춰준다.

그렇다면 아이를 입양하는 양부모들은 어떤 사람일까? 지은이는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마치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구원하는 듯한 태도로 입양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이사야 43:6)는 성경구절을 외치며 열광적으로 입양에 나서는 미국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문득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시편 113:3)라는 표현 때문에 지동설을 박해하고 천동설에 집착했던 중세 기독교가 연상된다.

지은이가 양부모들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어쩔 수 없이 입양을 선택해야 하는 제3세계의 상황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악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을 끈질긴 취재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아기를 수출한다”거나 “가난한 나라의 아이를 구원의 대상물로 만든다”는 비판을 날 세워 들이대지는 않는 대신, 선한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하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제대로 잘 하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설득한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나쁜 결과를 보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면, 선한 의도까지 의심 받기 마련이다.

아마존닷컴에 올라온 이 책의 리뷰는 논쟁적이다. “지은이가 주장하는 내용에 동의할 수밖에 없어 슬프다”는 독후감부터, “입양의 다양한 측면을 다 반영하지 못했다”며 편파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국 독자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이 책을 번역해 펴낸 뿌리의집은 서울 경복궁 근처에서 해외 입양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이들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김도현 뿌리의집 원장은 “인종주의와 신학적 오류에 빠진 해외 입양의 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라며 “입양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만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고 밝혔다. 박준영 옮김.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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