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도원욱] 한 말씀만 하소서 기사의 사진
여름 몸살로 입안이 헐고 밤잠을 설친 후에 타이레놀 두 알을 집어 먹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세계 랭킹 19위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무승부라고 하는 쾌거를 거둬낸 경기로 말미암아 국민 정서가 또 한번 상기되고, 한동안 눈과 귀가 쏠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분명 아쉬움이 있었지만, 솔직히 패한 것보다야 낫다. 그러나 경기가 한창인 순간에도 응원을 해야 하는지 어쩐지 망설여졌다. 관심을 주는 만큼 잊혀질 것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질문

역사란 잊혀지기 마련이겠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역사의식이 부재하다고 하는 사실은 제 아무리 대단할 지라로 그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소유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말해준다. 왜곡된 역사관은 더 심각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참사를 즈음하여 270여명의 기독교인 여학생들을 납치한 아프리카의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다. 그들이 이번에는 테러를 감행했다. 월드컵 응원 장소에 폭탄을 던져 수십명의 무고한 살상을 가져왔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검은 대륙의 부모들 앞에서 그 흉악한 무리들은 ‘인샬라’를 외칠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신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왜곡된 역사의식은 신의 주권에 대한 오해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문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넘어가야 할 높은 산이 아닐 수 없다. 천국 같은 미소를 지녔던 가녀린 모습의 작가 고(故) 박완서씨는 1988년에 남편을 폐암으로, 석 달 후에는 26세의 아들을 잃어야 했다. 장래가 촉망되던 마취과 레지던트 아들의 돌연사는 그녀가 홀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하늘을 향하여 처절한 울음을 울어가며 일기를 기록하게 했다. 그 일기는 15년이 지난 후에야 ‘한 말씀만 하소서’(2004·세계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상을 당한 이에게 정중한 조문을 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도덕이지만, 참척(慘慽)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요, 견디기 어려운 수모이다.

그 뜻을 발견하는 길

살을 저미듯 아픈 마음이 아름다울 만큼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내용 중에서 기억되는 부분은 88서울올림픽이 그녀에게 또 하나의 견딜 수 없는 고문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같은 심경으로 월드컵을 맞이했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글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구절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이 구절에서 ‘상했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깨어졌다(broken), 산산이 부서졌다(shattered)’라는 뜻이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국 산산이 부서진 심령,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과 가누기 어려운 육신밖에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이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던 박완서씨의 마음, 수백명의 딸들을 잃은 아프리카 부모들의 마음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지독한 두통과 몸살을 앓듯 혼미한 심경으로 맞이한 월드컵이 그들에게 과연 무엇이 될는지…. 그러나 설령 그처럼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있을지라도 성도는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토해야 한다. 오직 그분께만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한다. 지금도 곁에 서신 채 어미보다 더 애처로운 두 눈으로 울고 있는 자녀를 바라보시는 그분만이 낭자한 상처 위에 기름을 부으시고 싸매어 주실 수 있다. 마음의 제사를 드리는 그 길만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으로 가는 길, 그분의 품에 안겨 토닥이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고 그분의 참 뜻을 발견하는 진리의 오솔길이다.

도원욱 한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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