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아이들을 꿈꾸게 하라 기사의 사진
열한 살에 아버지를 잃은 김모 장관은 청계천 판잣집과 천막을 전전하며 상고를 졸업했다. 상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한 그는 우연히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 잡지를 보고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도전해 공무원이 됐다.

요즘은 김 장관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아니라 돈으로 용 만드는 세상이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아이의 체력 등 4박자가 갖춰져야 소위 명문대 입학 꿈이라도 꿀 수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중학교 과정을 이미 다 떼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미리 공부하고 온 아이들과 학교 수업 진도만 따라온 아이들은 출발부터 공정하지 않다.

연간 사교육비가 20조원 아래로 떨어지고 강남 학원가가 시들해졌다고 하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소리다. 대형 학원들은 외면받지만 극성 엄마들은 소문난 학원 강사를 좇아 과목별로 팀을 꾸리고 아이들을 ‘시험 잘 보는 기계’로 만들기 위해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기숙형 자율형사립고(자사고)들은 학생들을 4시간 재울 것이냐, 5시간 재울 것이냐를 놓고 경쟁한다.

명문대 입학은 돈과 비례한다. 지난해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서울지역 일반고 출신 합격자의 70%가 강남3구 출신이다.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비율은 32.5%에 달했다. 논술시험과 면접시험을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고, 입시설명회에서는 자소서(자기소개서) 작문(?)을 잘한 것이 일류대 합격 비결이라고 말하는 세상이니 분명 비정상이다. 오죽했으면 대치동에 살면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SKY 전업맘’(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 전업주부)이나 ‘이대 전업맘’을 취직시켜야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란 우스개까지 나올까.

6·4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데에는 무한경쟁과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에서 꿈꾸며 살게 해달라는 앵그리 맘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 뮤직비디오에서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컨베이어벨트에 오른 아이들이 똑같은 모양의 소시지가 되어 나오는 한참 잘못된 교육 시스템을 바꿔달라는 절규다. 진보 교육감들이 보수 후보들 싸움에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분석을 하거나,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자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 교육감들은 표로 나타난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을 실천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교육을 통한 희망의 사다리를 복원시켜야 한다.

그 첫걸음은 황폐화된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서민들은 엄두도 못 낼 비싼 등록금과 불법·편법 운영으로 귀족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국제중학교나 자사고를 존속시켜야 하는지 재고해봐야 한다. 박근혜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 지난해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개선하려 했지만 자사고와 학부모들이 ‘자사고 죽이기 정책’이라며 반발하는 바람에 무릎을 꿇었다. 백년대계(百年大計)여야 할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것도 걱정스럽지만 이익집단의 반대에 부닥쳐 잘못 꿰어진 단추를 그대로 놔두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80%에 육박하는 대학진학률을 낮추고 학생들이 꿈과 적성에 따라 다양한 미래를 찾아가도록 하는 것도 ‘교육 대통령’인 교육감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하지 말아야 할 건 교육에 정치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17명의 시·도 교육감 중 13명의 진보 교육감이 탄생하면서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나 역사교과서 발행 등을 놓고 보수적인 정부와 마찰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진보 교육감들은 ‘좌파 교육’하라고 뽑아준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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