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승한] 아르메니아 기사의 사진
아르메니아는 남서쪽으로 터키, 남동쪽으로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구 200만명의 작은 나라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아라랏 산을 중심으로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 형성되어 있다. 이 때문일까. 아르메니아인은 스스로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의 아들인 고멜의 후손이라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슬람 국가 터키와 이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국교인 아르메니아정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를 굳건하게 지켜가고 있다.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라 불리는 정교회는 고대 교회의 예전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어 개신교 신도들은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동지역 그리스도교 보루

아르메니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바돌로매와 다대오가 복음을 전했고, 주후 301년 세계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이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레고리오가 페르시아의 침략을 피해 카파도키아로 피난 갔다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뒤 돌아와 복음을 전했다. 이 복음의 씨앗이 오늘날 아르메니아교회의 시작이 됐다. 아르메니아교회는 주후 451년 칼케톤 공의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단성론(예수는 신성과 인성 모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성만 있다는 설)을 배격하자 오히려 이를 받아들였고, 1054년 그리스도교가 서방교회(로마가톨릭)와 동방교회(정교회)로 갈라질 때 동방교회에 남았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만을 인정하는 신학 사상 때문에 영지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으나 이것이 오히려 복잡한 중동의 종교·정치 환경 속에서 개종 압력을 견디고 그리스도교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아르메니아에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개신교회의 선교가 시작된 것은 불과 160여년 전이다. 복음주의 교단이 처음 선교를 시작했지만 정교회의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 교세가 성장하지 못했다. 인구 200만명 가운데 97%가 정교회 신자이다.

그러나 척박한 개신교 선교환경 속에서도 최근 오순절 성령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개신교 부흥운동이 일고 있다. 십수년 사이 개신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인 2만명으로 늘었다. 이러한 부흥운동은 정교회 중심의 아르메니아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부흥운동을 이끌고 있는 생명의말씀 교회는 교인이 8000여명이고, 아르투스 샤모난 담임목사는 40대 후반의 젊은 패기로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는 무거운 전통의 옷을 입고 있는 정교회의 무게를 인정하면서도 젊은 청년들과 중년 세대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며 겸손하게 다가가고 있다. 이달 초에는 조용기 목사를 초청해 아르메니아 개신교 역사상 가장 성대한 부흥성회를 개최했다.

1% 개신교 변화 저수지 기대

아르메니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웃 국가로부터 엄청난 핍박과 압제를 받은 역사를 갖고 있다. 1894년부터 96년, 그리고 1915년부터 16년 사이에 오스만제국에 대규모 민족학살을 당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과 압제, 학살의 진토 속에서도 개신교인들이 주도가 되어 민족정신을 잃지 않고 나라를 지켜 온 것처럼, 아르메니아인들도 정교회의 영적 지도 아래 무슬림 국가의 핍박과 압제로부터 온전히 나라를 지켜냈다. 예수 정신, 복음으로 무장된 개신교인들이 우리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듯이 아르메니아 개신교회가 민족을 새롭게 하는 변화의 저수지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승한 종교국장 s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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