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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오승은] 동유럽의 ‘사회주의 향수’

[글로벌 포커스-오승은] 동유럽의 ‘사회주의 향수’ 기사의 사진
2000년대 초반 불가리아에서 유행하던 농담이 하나 있다. 어떤 부부가 한밤중에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인이 벌떡 일어나서는 황급히 부엌으로 가더니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화장실로 가더니 약장 문을 열어보고, 거실로 달려가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열어봤다. 궁금해진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묻자, 부인은 ‘악몽을 꾸었다’고 대답했다. ‘꿈에 보니 냉장고에 먹을 것이 그득하고, 화장실 약장에는 약병이 가득 차 있고, 거실 창밖을 보니 거리엔 쓰레기도 없고 안전하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남편이 반문했다. ‘그게 왜 악몽이냐?’고.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공산당이 다시 돌아온 줄 알았다’고.

이 불가리아 유머는 동유럽 보통 사람들이 체제전환 과정에서 변화한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공산당은 더 이상 권좌에 없어 좋은데 ‘텅 빈 냉장고’가 의미하듯 빈곤해진 삶의 조건은 또 다른 악몽 같은 현실인 것이다. 실제로 동유럽 거리 곳곳에서 들리는 가장 빈번한 탄식은 예전에 비해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정작 내 주머니에 돈이 없다’이다.

이런 면에서 동유럽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사회주의 향수’는 일견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체제 전환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 체제를 그리워한다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정체와 결핍, 비효율성의 상징’으로. 그야말로 ‘신물 나서’ 스스로 무너뜨린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가. 그런데 그 시절이 그립다는 것이다.

우선 여론조사를 해보면 2002년 폴란드에서는 응답자의 56%가 ‘1970년대가 더 좋았다’고 답했으며, 2005년 루마니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65%가 ‘1989년 이전이 더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사회주의 시절 상품들이 다시 불티나게 팔린다는 사실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코카콜라들 본떠 만들었던 체코의 ‘코폴라’, 폴란드의 ‘폴로-콜라’가 인기리에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 헝가리에선 사회주의 시절 피우던 담배 ‘심포니아’가 재생산되며, 아디다스 대신 신었던 값싼 비닐 운동화 티사를 젊은이들이 다시 찾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동독 향수를 다룬 영화 ‘굿바이 레닌(2003)’을 통해서도 동유럽 사회주의의 향수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경제적으로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된 생활수준에 대한 불만족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체제 이행 과정에서 득을 본 계층은 분명 존재하지만 다수는 아니다. 대다수 동유럽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회주의 시절 소박한 수준에서나마 보장받았던 기본 생계소득과 안정된 생활수준마저 박탈당해야 했다. 소위 ‘충격요법’이라 불린 이행 프로젝트가 시행된 첫 10년 동안 6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져갔다. 연금을 비롯한 복지 수당은 급감했으며 식료품, 집세, 공공요금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은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그렇지만 이를 보상할 대책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2013년 3월, 불가리아에서 40세 실직 가장이 가난을 못 이겨 ‘하나 밖에 없는 아들한테 빵조차 먹일 수 없는 현실을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메모를 남기고는 분신자살했다. 이렇듯 동유럽 보통 사람들 다수가 체험한 자본주의란 사회주의 근대화를 통해 확보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생활수준마저 빼앗아 가버린 체제, 그래서 환상이 아닌 환멸을 느끼게 되는 체제에 다름 아니다. 사회주의 향수는 그 반향이라 할 수 있다.

체제 이행 24년 동안 약속된 ‘풍요의 땅’으로 가는 줄 알고 열심히 왔더니 ‘황량한 사막’이라는 한 젊은 동유럽 지식인의 자탄을 들으며 문득 생각해본다. 한국의 근대화 50여년, 우리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풍요의 땅’이 아닌 ‘황량한 사막’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오승은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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