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국내에서만 아이 취급받겠다는 거인 기사의 사진
혜택보다 폐해가 더 클지도 모르는 문명의 이기 리스트 가운데 자동차는 원자력 발전과 함께 1, 2위를 다툴 것 같다. 이 굴러다니는 괴물은 전 세계에서 매년 50만명을 사고로 숨지게 만들고, 수억명의 건강을 해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승용차를 운행하지 않아도 그 폐해와 불이익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무연휘발유가 나오기 전 뉴욕 빈민가 어린이 사이에 납 중독 환자가 속출했다. 개발도상국 대도시의 어린이들은 하루 두 갑의 담배연기에 해당하는 자동차 매연을 흡입한다.

그렇지만 원자력 발전에 비해 자동차의 이미지는 좋은 쪽으로 편향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운전자에게 너그럽기 그지없다. 차고지 증명이 없어도 차를 살 수 있고, 사망 사고를 내도 웬만하면 형사면책이 된다. 게다가 오염물질 배출량이 큰 중대형 승용차 비중이 세계 추세와는 정반대로 늘어만 간다. 우리나라의 중대형차 대 소형·경차 비중은 7대 3으로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의 약 3대 7과 정반대다. 근검절약 정신과 공동체 의식의 부족, 또는 특유의 체면문화를 탓하기도 한다. 일리가 있지만 그보다는 자동차 제작사들의 이윤 극대화 전략의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국내 경차는 단 2종에 불과하고, 광고도 하지 않는다. 중대형차의 이윤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 자동차 제작사들이 연비 허위 표시로 국내외에서 홍역을 앓았다. 정부가 26일 발표할 강화된 ‘자동차 연비조사 및 처벌에 관한 고시’도 연비가 리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 보상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포드자동차가 미국에서 연비 과장이 드러난 링컨 등을 구매한 국내 소비자에게 150만∼270만원씩 보상키로 한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차종이라도 국내외의 무상보증 기준이 다르다는 등의 차별은 국내 소비자들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 차별은 국내시장 안에서도 눈에 뻔히 보이게 됐다. 현대·기아차는 ‘세계적 거대기업’으로서 치열한 국제 경쟁을 버텨내면서도 국내 시장에서는 정부 당국의 보호를 받는 유치산업, 즉 어린이 취급을 받겠다는 자세를 못 버리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를 둘러싼 마찰도 마찬가지다. 저탄소차 협력금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준보다 많은 차를 살 때에는 부담금을 매기고, 적은 차를 사면 보조금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는 지난해 4월 법이 통과될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제도를 유보하거나 철회해야 한다고 난리다. 뒤늦게 따져보니 차량 크기 대비 연비가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낮은 일본과 독일 수입차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이다.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자동차 소비자가 부과금이나 탄소세를 물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국제 기준이다. 내수판매 감소가 그렇게 싫다면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유럽 수준으로 높이도록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게 정도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자동차 하자에 대해서는 “내가 재수가 나빠서…”라며 체념하는 경향이 있다. 차의 크기와 외양을 주된 선택 기준으로 삼는 과시적 소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내 소비자들은 계속 ‘봉’ 취급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 자동차의 내구성, 연료 경제성과 친환경성을 우선적으로 꼼꼼히 따져야 한다.

국내 자동차 제작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 품질 혁신 등을 통해 물량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 5위의 세계적 기업이 됐다. 외신들은 15년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최후의 ‘빅6’에 국내 메이커는 하나도 들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성공의 이면에는 수많은 납품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우리나라 국토와 인구가 충분한 내수시장을 떠받칠 수 없다면서 80년대 초 자동차산업 육성 정책에 반대했었다. 자동차산업은 현재 한국경제의 자랑거리이지만 수십 년, 아니 불과 십수년 후에도 그럴지는 아무도 모른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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