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성] 자기확신의 위험성 기사의 사진
“당신이 진정 정의를 확신한다면 당신은 정의가 원하는 바를 당신도 원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정의에 대한 당신의 확신이 진정한 것이기만 하다면 당신이 하는 모든 행위의 윤리성은 절대적으로 보장된다”는 것과 상통한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기만 해도 정의에 대한 진정한 확신은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충족해 주기 때문이다.

요사이 한국 사회의 내부와 외부에 이러한 기묘한 명제가 이미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일본의 역사인식 논란은 이런 명제의 외부적 사례의 단적인 표본이다.

일본 극우파들이 말하는 정당한 역사 인식은 이미 그 유전자를 의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2000년 일본 도호쿠 구석기문화연구소의 후지무라 신이치 부이사장의 구석기 유적 발굴 위조사건이 보여주는 문명의 근원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면, 인간 세상의 창조신이 일본 왕실의 직계신인 아마테라스오오카미와 직접적인 혈통관계로 확정되어 있는 독특한 관찬역사서 ‘일본서기’의 첫머리 구성법 역시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역사관은 성노예 강제 동원의 현대사를 비틀어 자기 식으로 검증하고 해석하는 행태로 이어지고 있다.

창세신(創世神)의 직계혈통을 이어받은 민족이고 인류 문명의 근원지를 살아온 민족이기를 그렇게도 집착하는 일본 극우집단의 유전자 속에는 성노예 강제 동원과 같은 과거의 비문명적 행위를 결코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가 언제나 잠복해 있다. 저들의 행태는 “우리의 역사 인식에 대한 확신이 진정한 것이기만 하다면 우리가 행하는 역사 인식의 모든 결과에는 절대적 타당성이 보장된다”는 자기 확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이단적 종교집단의 실질적 교주로 행세했던 사람들의 행태는 내부적 사례의 결정판이다. 그는 자신의 신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것이기에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신의 사랑 안에서 절대적 윤리성을 스스로 보장한다.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신의 뜻과 동의어가 되고 그 행위의 절대적 윤리성은 다함없는 재화의 축적 혹은 재화를 향한 포식성과 동의어로 일대일 대응한다.

국회의사당 안에서는 “내 약혼자는 결단코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어. 왜냐하면, 그렇다면 내 약혼자가 아니니까”라는 유명한 서양 농담이 신념처럼 자리 잡은 지 오래인 듯싶다. 각종 민생 관련 법안의 처리는 중립에 기어를 놓고 가속페달을 밟아대어 매연에 소리만 요란하다. 누더기가 된 인사청문회와 관련된 무수한 개선안들은 자기네 정당의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빈사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다는 그들의 소명의식은 다가올 국회의원 재보선의 승패를 미리 셈하는 것으로 복제되는 형국이다.

이 농담을 이렇게 바꾸어도 크게 잘못은 없을 터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한시라도 정의에 대한 진정한 확신을 놓아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아니니까.”

단군 이래 최대 국가사업인 현 정부의 ‘국가 개조’ 역시 “내가 국가 개조에 대한 확신이 진정한 것이기만 하다면 내가 하는 국가 개조를 위한 모든 행위의 정당성과 윤리성은 절대적으로 보장된다”는 기묘한 자기 확신의 명제를 다시 만들어 내고 신념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미 사퇴한 총리 후보자를 포함하여 이 중차대한 사업의 선봉장으로 내세운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꺼이 행하지 않는 그 모든 인식과 행위가 오히려 정의의 진정한 확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 서글픈 명제를, 필자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의 겉과 속에서 우선 되새김질하고 현재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진정한 개혁과 변화의 싹을 틔울 수 있다.

박종성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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