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염성덕] 스스로를 사랑합시다 기사의 사진
세월호 병폐 반드시 척결해야

합동참모본부를 두 번째 출입할 때였다. 출입처에 이름을 올리면 합참의장과 출입기자의 면담이 이뤄진다. 면담은 차 한 잔 마실 만큼의 시간만 허용된다. 하지만 기자는 면담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합참의장과 친밀하다는 인상을 줘야 합참에서 취재하기가 한결 쉽기 때문이다.

당시 김동진 합참의장은 불행한 일을 당한 상태였다. 의장 공관에서 불이 나 김 의장의 어머니가 숨지고, 아들이 얼굴과 기도(氣道)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다친 것이다. 해외를 순방하던 김 의장은 급히 귀국했다.

김 의장은 인명 피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병사들이 공관 주변을 경계하고 공관 안을 담당하는 군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김 의장이 분노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그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리곤 기자가 걸프전 종군기자로 특파됐을 때 태아를 잃었던 사연을 소개했다. 기자는 요르단 암만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취재활동을 벌였었다.

미국은 이라크를 향해 가공할 화력을 쏟아부었고, 이라크는 텔아비브에 스커드 미사일들을 발사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황을 지켜보던 기자의 아내는 남편의 안위에 속을 태우다 태아를 잃고 말았다. 젊었던 기자는 심각하게여기지 않았지만 아내는 오래도록 마음고생을 했다. 태아를 잃은 슬픔도 큰데,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었으니 얼마나 슬프겠느냐고 김 의장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김 의장의 아들이 목숨을 구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김 의장의 아들은 할머니를 구하려고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화기(火氣)가 아들을 덮치면서 화상을 입은 겁니다. 그러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살길부터 찾습니다. 아들이 2층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친 것도 상황이 급박했음을 뜻합니다. 불길이 순식간에 치솟으면 누구라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는 불가피했던 상황을 이해하고 마음속에서 분노를 거두기로 한 것 같았다. 서서히 마음의 문도 열었다. 면담은 길게 이어졌다. 그는 부속실까지 배웅하며 고맙다고 했다. 기자의 아픈 경험이 한 사람을 살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토처럼 슬픔 딛고 일어서길

문득 동일본 대지진 참사 때 초등학생 딸을 잃은 사토 도시오가 최근 한겨레신문에 보낸 사연이 떠오른다. 사토의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전교생 108명 가운데 74명이 쓰나미로 목숨을 잃었다. 사토는 보호자나 아이들이 피난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 (교사들은) 50분 동안이나 교내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선생님이 한마디만 했으면 모두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상황이 세월호 참사 때와 너무 비슷했다.

사토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썼다. “즐거운 추억이 담긴 날들이 올해도 돌아옵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죄는 이 슬픔은 딸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중략) 이 슬픔과 함께 저의 남은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이따금 꿈에서 만나는 딸은 언제나 웃는 얼굴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지기 위한 심정으로 사토는 편지를 썼을 것이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으려면 지금까지 불거진 모든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이젠 남아 있는 가족들이 곁을 떠난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사토의 바람처럼 스스로를 사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염성덕 종교국 부국장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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