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은폐의 끝과 고백의 힘 기사의 사진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론’에서 자기 자신의 낯 뜨거운 과거사를 담담한 필치로 가감 없이 그려놓았다. 그는 18세에 동거를 시작해 사생아를 낳았다. 31세 때 황실 교수좌에 오른 후 천한 신분의 동거녀를 버리고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열 살배기 양가집 규수와 약혼했다. 물론 어머니 모니카가 주선한 약혼이었다. 그런데 로마법상 여성은 12세가 돼야 결혼 및 성관계를 할 수 있었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다른 여자를 얻어 2년 예정의 시한부 동거를 시작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여자를 늘 수단으로 대했다는 점을 기꺼이 시인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그의 고백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황실 교수좌라는 수사학자 최고의 명예직이 안고 있던 기만의 허울을 여지없이 벗겨버린다. 그는 황제를 위한 연설을 해야 했다. 달콤한 아첨과 허황된 거짓으로 황제를 찬양했고, 사람들은 그의 찬가가 거짓임을 알고도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괴로운 나머지 밀라노 거리를 방황하다가 술에 취한 한 거지를 발견한다. 거지는 행인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술을 얻어 마시곤 했지만 얼굴에는 근심이 없어 보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거지의 행복도 참 행복은 아니겠지만, 내가 야망을 품고 추구했던 행복은 더욱더 거짓된 행복이었습니다.”

진실한 고백이 빚어낸 ‘고백록’을 읽다가 문득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비극에서 최근 총기난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모습은 고백보다는 숨김과 은폐에 더 급급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세월호 관련 1차 재판이 열렸다.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의 변호사는 “반대편에서 배 한 척이 올라왔다”며 “충돌하지 않도록 레이더와 전방을 관찰해 무전을 듣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동안 수사 당국은 선체 불법개조, 화물과적 및 고박부실, 급변침 등을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급변침 원인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3등 항해사는 급변침이 선박 충돌을 피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반대쪽에서 올라온 배 한 척’이 무엇인가? 3등 항해사는 진리의 이름으로 이 배의 실체에 대해서 자세히 ‘고백’해야 한다. 그럼에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3등 항해사는 왜 진작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수사기관은 여태껏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22사단 GOP 총기난사 사건을 접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건의 진실에 굶주려 있다. 그런데 군(軍)의 태도를 보면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을 상대로 ‘가짜 임 병장’을 후송한 것도 모자라 병원 측 요청으로 그렇게 했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임 병장의 메모 비공개 건을 놓고는 유족들 반대로 메모를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또다시 거짓을 말해 유족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눈속임과 거짓을 일삼는 군의 태도를 보면서 의심에 걱정이 덮쳐온다. 과연 군 검찰이 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까. 사실과 진실을 외면하는 만큼 손상되는 우리 군의 전투력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진실에 굶주린 우리들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고백해야 개인도 살고 사회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일어난 일을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악이 태어난다. 그런 은폐의 끝은 사회적으로는 퇴보요, 신앙적으로는 멸망이다. 무엇이든 사실대로 고백할 줄 알아야 나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다. 고백의 힘은 사회적으로는 발전이요, 신앙적으로는 구원이다. 일어난 대로 말하고, 일어난 대로 고백하는 사회를 유토피아로 넘겨버릴 수는 없다. 모든 말이 진실에서 흘러나오도록 우리 모두 깨어나야 한다.

남성현 한영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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