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박서원 빅앤트인터내셔널 대표 “낙태율 1등 국가… 왜곡된 性의식 개선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박서원 대표는 콘돔사업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을 돕는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민감한 사회이슈의 해결책도 찾고 수익도 창출하고 싶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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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원(35)이란 이름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2009년이다. 그가 운영하는 광고·디자인회사 빅앤트인터내셔널이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는 옥외 반전 포스터로 국제 5대 광고제에서 15개나 되는 상을 싹쓸이하자 언론들은 뉴욕에 본사를 둔 직원 10여명의 회사가 세계 광고계를 제패했다며 흥분했다.

한 군인이 겨눈 총대가 기둥을 한 바퀴 돌아 자신의 뒤통수를 겨누는 기발함에 전 세계가 감탄했다. 이듬해 대형 건물 전체를 뒤덮는 ‘북쉘프’ 광고로 뉴욕 원쇼에서 옥외부문 금상을 탔을 때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것이 알려져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그러더니 얼마 전엔 콘돔사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조금은 낯 뜨거울 수 있는 사업을 들고 나온 이 남자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사무실 직원에게 메모를 남겼더니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인터뷰는 고사하고 겹겹의 담장을 치고 사는 대부분의 한국 재벌 2, 3세와는 다른 모습에 지난 24일 서울 한남동 사무실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유쾌했다.

-콘돔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

“표면적인 이유부터 얘기하자면 콘돔에 대한 장벽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됐다. 작년에는 한 회사가 콘돔 광고를 많이 했지만 재작년 미국 친구가 우리나라에는 왜 콘돔 광고가 없느냐고 묻더라. 불법은 아닌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나라 콘돔 사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이고 낙태율은 1등이더라. 1년에 35만건의 낙태가 이뤄진다. 크고 작은 성병 전이율도 상위권이다. 네이버에 콘돔이라는 단어를 치면 19금이라서 기본 정보를 못 받는데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에 대한 지식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전달받아야 하는 사람이 청소년들이다. 인성교육과 함께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쌓여야 성인이 돼서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미국은 고교 양호실에 콘돔이 비치돼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제가 하고 싶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좋은 물건 만드는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을 많이 했다. 콘돔이 대표적인 경우다. 전 세계 콘돔의 30% 가까이를 생산하고 세계 1등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지만 브랜드가 없다. 콘돔 시장 규모는 몇 천억원에서 몇 조원일 텐데 제조만 하다보니 수익은 몇 백억원 수준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회사들이 브랜드를 만들고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제품명이 ‘바른생각’인데.

“콘돔 하면 부끄러워하고 창피하고 야하다 생각한다. 약국이나 유통매장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는 제품이 콘돔이다. 비싸서는 아닐 테고, 제 경험에 빗대보면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판매원 앞에 줄을 서서 계산하려면 부끄럽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성적으로 자극적인 문구와 이름, 디자인이 많다. 콘돔을 쓴다는 것이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나를 보호할 줄 아는 바른 생각인데 그런 의미를 담은 브랜드를 만든다면 사람들의 저항감이 줄지 않을까 생각해서 지었다.”

-5월 말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성과가 있는지.

“수출이 많이 진전됐다. 한국에선 유통업체 1곳과 몇 군데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반응이 아주 좋다. 바이어들이 바로 보고 연락해 오기도 한다. 미국 1곳, 중국 2곳,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바이어와도 얘기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남미와도 접촉하고 있다.”

-사업 수익금을 미혼모 돕기 사업에 쓴다고 했던데.

“성과 관련된 후원사업을 하겠다고 얘기했는데 말이 잘못 나간 것이다. 입양원이나 고아원, 병원에서 성병 관련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기부할 생각이다. 나머지 금액은 성교육 콘텐츠 제작하는 데 투자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찾아서 보고 싶은 재미있는 영상 하나, 학교나 기관, 어른들이 보여주고 싶은 교육에 중점을 둔 영상 하나, 여러 가지 이슈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등 종류별로 다양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



조금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재벌가 4세가 콘돔사업을 한다고 하면 포장은 그렇게 하지만 돈벌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법도 한데.

“전혀 아니다. 돈벌이할 거면 내가 직접 공장 세워서 하지, 뭐하러 중소기업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그분들한테 물건값 최우선으로 지급해주면서 하겠나. 이 사업은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을 받아서 브랜드 입혀서 파는 거다.”

-아버지는 뭐라 하셨나.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오해가 제가 한다고 하면 두산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빅앤트랑 두산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면 또 나오는 질문이 아버지는 뭐라 하셨느냐는 질문인데 다 만들고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그냥 ‘그래라’ 하셨다. 아버지가 아무 말씀 안 하시니까 동생이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하시는 말씀이 ‘하지 말란다고 얘가 안 하겠냐’고 하시더라. 아버지는 제가 하는 일을 재미있어 하신다.”

-콘돔 외에 어떤 다른 사업 아이템을 구상 중인가.

“한국 제품이 경쟁력 있는 게 많은데 외국 브랜드에 밀리거나 실제는 잘 팔리는데도 브랜드가 없어서 지속적이지 못한 게 많다. 꾸준히 가려면 브랜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잘하는 제품들을 찾아서 좋은 환경도 만들고, 수익도 환원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첫 번째가 콘돔이다.”

-2009년 총구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 반전 포스터를 통해 전쟁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키고 국제 광고제를 석권했다.

“공익 캠페인을 만들어보자고 친구들이랑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는데 직원 중 한 명이 빙글빙글 도는 화살표를 그려왔다. 처음엔 환경 쪽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때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이었다. 이라크 주둔 병사 철수가 최대 쟁점이었는데 이거다 싶어 반전 포스터를 만들었다.”

-사람 모양의 투명 재떨이 광고로도 뉴욕 원쇼에서 상을 탔는데 공익광고를 주로 하는지.

“주로 상업광고를 한다. 공익광고는 재미 반, 의무 반으로 했다. 4년 전 담배꽁초를 넣으면 사람의 폐로 퍼져나가는 투명 재떨이 광고를 만들고 나서 20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생각하는 미친 놈’이란 책을 냈다.

“책 만들자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는데 2년 동안 거절했다. 저는 항상 제 기록을 남기는데 2011년 빅앤트가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시점이라 재미로 하다가 책을 내게 됐다.”

-책 팔아서 나오는 인세를 난치병 환자 돕는 데 쓴다고 했는데.

“책이 많이 팔리면 많이 도와주고 싶은데 인세가 너무 미미하다. 병원에 가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치료받지 못하는 아기들 순번이 있는데 많이 벌어서 도와주고 싶다. 몇 년 전 여자아이의 발 펴는 수술을 도와준 적이 있다. 세 살 때 버스가 후진하는데 졸도한 엄마를 살린다고 걸어가다가 발이 바퀴에 깔려 으스러졌다. 부모가 불법체류자라 간단한 치료만 받고 나왔다. 그때 250만원만 있었으면 고칠 수 있었는데 나중에 후천적 기형이 돼 3000만원의 수술비가 필요했다. 책을 쓰고 있던 시점이어서 파트너사와 프로젝트를 해서 발 펴는 수술을 도와줬고 앞으로도 인세를 기부하겠다고 했다.”

-풍요롭게 자라 어려운 사람들한테 관심을 갖기 쉽지 않았을 텐데.

“선입견이다. 제가 아는 분들은 그런 분 많지 않다. 어렸을 때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저와 친한 친구들은 보통의 집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생활하는 친구들이다. 저는 뭐든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집안 때문에 여기까지 오진 않았다. 학교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여기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 강의를 많이 다니고 있다. 일주일에 3일을 빼서 3개 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누리는 만큼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교육 영향은?

“아버지는 항상 ‘너는 무엇을 하든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네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회사에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도 말고, 들어올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저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했다고 하던데.

“50여명 중 거의 꼴찌를 했다. 대학교 때 퇴학도 당했다. 이런 얘기들이 알려져서 부모님들이 우리 애 좀 만나달라고 연락해오기도 한다. 시간이 되는 대로 다 만나주는데 부모님들에게 아이가 원하는 걸 찾도록 그냥 놔두라고 조언한다.”

-박 회장은 사진기자가 꿈이었다고 하더라. 아들은 어떤 꿈이 있었나.

“여러 가지 꿈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배우인데 ‘뱀파이어’ 출연으로 꿈을 이뤘다. 영화나 공연 감독을 해보는 것도 꿈이었는데 뮤지컬 ‘주유소 습격사건’ 영상감독을 해봤고 지금 하는 것도 비슷한 작업이니 그 꿈도 이룬 것 같다. 요리사를 희망한 적도 있는데 손님들 모시고 여기 사무실(2층 주택을 개조한 사무실이어서 부엌도 있다)에서 밥해주고, 직원들한테도 요리해주고 있으니 간접적으로 다 해본 것 같다.”

-2006년 빅앤트를 창업했는데 개미를 특별히 좋아하는지.

“개미를 그리는 자체가 좋았다. 창작하는 사람들 중에 개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미는 작지만 면과 선, 곡선, 직선이 아주 세다. 자기 몸의 30배 이상 무게를 들어올리고 협동심, 부지런함 등 의미적으로도 개미가 그냥 좋았다. 이왕이면 큰 개미로 하자고 빅앤트(Big Ant)라고 이름 지었다.”

-앞으로 계획은.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사회적 이슈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해결책을 모색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게 제일 큰 목표다. 고객사 일을 열심히 해주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교육을 하고 싶다.”

박서원 대표는

단국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1999년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경영학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던 중 산업디자인에 눈을 떴다. 군복무를 마치고 2005년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디자인 공부를 했고, 1년 뒤 함께 공부했던 친구 4명과 빅앤트인터내셔널을 창립했다. 처음에는 디자인 일을 하다가 점점 큰 것을 하다보니 지금은 광고와 컨설팅, 브랜드 사업도 하고 있다. 뉴욕에서 시작한 다국적 회사였는데 지금은 뉴욕 사무소와 베이징 사무소를 폐쇄하고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 15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조만간 장충동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즐겁게 일하라’는 게 그의 모토. ‘창의력은 엉덩이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괜찮은 광고는 자유롭게 생활하다 어느 한순간 번쩍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으로 상상하지만 꾸준히 공부하고 스케치하고 아이디어를 내다보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박용만 두산 회장의 2남 중 장남. 좋아서 한다며 빡빡머리와 개미 문신을 고수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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