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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세상 읽기] 이단과 사이비를 변별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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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삶은 녹녹지 않습니다. 이럴수록 사람들은 어떤 것에서든 의지할 것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듯 사람들의 갈급함을 이용해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최근 이단종파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 교파를 지켜보면서 이성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교파의 대변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인터뷰에서 이런 고민을 토로합니다. “우리는 은행 대출을 받아 새 땅들을 샀고, 거기서 나오는 농산물로 먹고산다. 그런데 정부가 갑자기 우리를 사기 집단으로 몰아갔고 은행에서도 대출 이율을 3배로 올렸다. 불매운동 때문에 매출도 끊겼다. 23년간 노력했는데 이제 또 허사가 됐다.”

모든 조직의 존립 목적을 생각하게 합니다. 정당은 정치적 색깔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 위한 고유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정당이 사업체를 만들어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그건 정당이 아니지요. 기업은 어떤 목적을 갖고 있습니까. 기업의 존립 목적은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익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기업이 구성원들을 동원해 정권을 쥘 생각을 꾸민다면 기업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교회의 존립 목적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여서 사업을 하는 곳은 아닙니다. 교회를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 받은 자들로 구성된 신앙공동체라고 한다면, 교회는 영혼을 구하기 위한 결사체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끼리 교제를 통해 서로 사랑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단체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는 신앙공동체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미물조차 고유 목적이란 것을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모여 만든 모든 단체나 조직은 어느 하나 예외 없이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신앙공동체로서 교회는 한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명백한 고유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널리 확장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고유 목적을 혼탁하게 할 때 발생하게 됩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고유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회를 보더라도 마찬가집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이 제대로 수행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집니다.

저는 이단과 사이비를 변별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이단과 사이비를 판별하는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존립 목적과 다른 활동을 자꾸 추구할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따금 신앙이나 종교의 이름으로 모였지만 그 단체를 통해 영리활동을 하는 곳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활동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얼마든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그 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의 교회사를 잠시 들추어보더라도 이단과 사이비 종교로 비판받았던 곳은 대부분 영리 추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배타적인 단체를 구성하고 그 단체가 마치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처럼 이런 저런 사업을 만들어내는 곳은 시간이 가면 어김없이 사회적인 문제를 낳았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달라”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리활동을 주도하는 교주는 겉으로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운운하지만 결국은 자신과 일가권속들의 호의호식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인간에게 사적 이익의 추구는 너무 뿌리 깊은 욕망이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이를 뿌리치기 힘듭니다. 이따금 자신의 전부를 걸고 영리를 추구하는 종교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열심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나쁜 열심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잠언 19:2)는 말씀은 이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믿는 일은 자신이 경배하는 대상의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하려는 열심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믿고, 누군가의 선의를 믿을 것이 아니라 성경적 진리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이단과 사이비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길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도 튼실해지고 오래 가고, 즐거움도 있지요. 무엇보다 정념이 눈을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폐해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영혼을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안타까움입니다.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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