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청문회가 두려운 사람들 기사의 사진
타인이 허락 없이 내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걸 용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한다면 사생활 침해로 처벌받는다. 학력과 경력, 재산, 세금납부 실적, 범죄전력 등은 본인 의사에 반해 아무나 알아서는 안 되는 개인사이다. 프라이버시권은 기본권의 하나로 국가가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의 비밀을 일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공직자들로 고위직으로 갈수록 강도가 세다.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자는 학력·경력, 병역 및 재산신고사항, 최근 3년간 소득세·재산세 및 종합토지세 납부 실적 사항, 전과 등에 관한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헌재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장관,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이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자다. 하나같이 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의 책임자다. 이들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는 이유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미국에서 비롯됐다. 1787년 헌법 제정 때 도입됐으니 227년의 역사다. 대상자는 600명이 넘는다. 웬만한 공직자는 다 청문회장에 세운다는 말이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사전검증이 철저하다. 백악관은 물론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이 후보자의 지나온 길을 샅샅이 훑는다. 질문 항목이 230여개에 이르고 심지어 이웃의 평판까지 조사한다. 이 같은 사전검증에 통상 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엄격한 이 과정을 통과한 인사만이 청문회장에 서기 때문에 후보자의 국정철학과 정책 등을 묻는 고담준론의 청문회가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김대중정부 시절 도입된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00년 도입 당시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등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아야 하는 공직자만 대상이었으나 두 차례 법 개정을 통해 2003년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이, 2005년 장관이 추가돼 현재의 체제와 틀을 갖췄다.

아이러니는 청문회 대상이 장관까지 확대된 것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때 박 대통령은 논문표절 등 도덕성 시비로 낙마한 공직 후보자들을 예로 들어 “그토록 시스템을 강조해온 이 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 시스템조차 작동되지 못했다”면서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문회 대상을 전 국무위원과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위원장, 방송위원장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했다.

새 총리로 ‘국가 개혁의 적임자’ ‘국민이 원하는 분’을 찾겠다던 박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은 결국 휴지조각이 됐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정홍원 총리를 재기용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두 가지, ‘신상털기’와 ‘높아진 검증 기준’이다. 그러나 청문회의 근본 취지는 신상털기에 있다. 미국의 경우처럼 230여개에 이르는 항목과 이웃의 평판까지 조사는 못하더라도 후보자가 그 직을 맡을 적임자인지 아닌지 세세히 살피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국가기관이 해야 할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대통령 지적대로 청문회가 여론재판식으로 흐르는 게다.

국민들은 공직 후보자에게 성직자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법대로 산 사람이 공직자가 돼야 정상이다. 도덕성 등의 문제로 청문회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게 국민들의 바람이다. 국정철학이나 자질은 그 다음 문제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눈높이는 여기서 변한 게 없다. 국민 눈높이를 탓하기 전에 이 기준에 부합하는 후보를 지명했는지 돌아보는 게 순서다.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검증 강화를 요구하며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부한 적도 있다. 그 사실은 까맣게 잊고 지금의 신상털기와 국민 눈높이가 가혹하다는 박 대통령, 참 편한 대통령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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