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아이 아트] 공주는 왜 ‘눈속임 그림’에 반했을까 기사의 사진
트릭아이미술관에선 관람객들이 그림 속에서 놀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이 되려면 다양한 포즈는 필수다.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안을 유영하는 모습을 표현하려면 관람객의 기발한 연기력이 필요하다. 트릭아이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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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파차라키디아파 마히돌 태국 공주가 서울 홍대입구의 한 전시장을 비밀리에 찾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도 아니고 '트릭아이미술관'이었다. 이색 전시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이다. 그러나 공주는 자신을 알아보고 연신 절을 올리는 태국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결국 관람을 포기하고 서둘러 떠나야 했다. 태국에선 왕족을 신성한 존재로 보고 어디서나 경배하는 전통이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 전시이기에 태국 공주까지 몰래 보러 왔을까. 트릭아이(Trickeye)란 프랑스어로 '속이다'와 '눈'의 합성어인 '트롱프뢰유(Trompe-l'œil)'의 영어식 표현 'Trick of the eye'의 줄인 말이다. 착시를 이용해 평면 그림을 3차원으로 보이게 하는 미술기법을 말한다.

서울 마포구 홍익로 서교호텔 뒷골목 서교플라자 지하에 있는 ‘트릭아이미술관’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3D 체험미술관이다.

3일 이곳에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세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걸려 있는 명화들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작품을 만지면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전시는 명화, 판타지, 어드벤처, 트래블, 사파리, 로맨틱, 거울미로 등 총 7개의 주제로 진행된다. 관람객이 거대한 거인으로 변하는가 하면, 가만히 서 있는데도 천장에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2010년 개관한 트릭아이미술관은 전체 관람객의 70% 정도가 외국인 관람객이다. 2011년 1만6000명, 2012년 16만명, 2013년 32만명으로 외국인 관람객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올해는 벌써 외국인 관람객이 30만명을 넘었다. 국가별로는 태국이 5만3500명으로 가장 많이 찾았다. 홍콩 4만500명, 중국 3만9500명, 대만 9700명, 싱가포르 5000명 순이다.

이 미술관이 외국인 관광객과 국내 관람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금기가 없는 미술관이다. 대부분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딱딱한 분위기에 전시장 곳곳에 “만지지 마세요” “사진 찍지 마세요”라는 푯말을 붙여 놓고 눈으로만 감상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이곳의 그림은 만지고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동영상 촬영까지 가능하도록 자유로운 관람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둘째, 관람객이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전시 작품들은 관람객이 그림 속에 함께해야 완성작이 되도록 고안됐다. 관객이 수동적으로 구경하는 일방통행 방식이 아니라 양방향 소통 방식이다.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온갖 자세를 취하며, 심지어 물구나무를 서기도 한다. 관람객이 설치작품의 작가가 되고 그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셋째, 3D의 생생함이 살아 있다. 미술관 벽과 바닥에 설치된 모든 작품은 특수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도 입체작품으로 보인다. 원근법을 활용해 시각적 3D효과를 극대화시킨 마술 같은 그림이다. 얼음으로 미끄럼틀과 의자 등을 만들어 곳곳에 배치한 냉동관에서는 온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왕국에 온 느낌이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더라도 이곳에서 5분만 있으면 몸이 얼어붙는다.

트릭아이미술관의 인기는 세계 최대 다국적 여행전문커뮤니티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확인된다. 트립어드바이저는 3월 말 기준 서울 소재 180개 박물관·미술관 중에서 방문자 평가 점수 랭킹 1위로 트릭아이미술관을 선정했다. 2위는 국립중앙박물관, 3위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차지했다. 인가가 높다보니 인사동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트릭아트 뮤지엄’이라는 짝퉁도 생겨났다.

해외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콘텐츠의 힘은 블록버스터 전시를 능가하고 있어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부산과 제주에 분관도 있다. 아시아권에서 한류미술관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트릭아이미술관은 지난 5일 싱가포르 센토사리조트월드와 손잡고 해외 1호점을 개관했다. 오는 10월에는 홍콩에, 12월에는 중국 선전과 하이커우에 분관을 열 예정이다.

홍대 앞 뒷골목에서 시작한 트릭아이미술관 열풍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강형구 트릭아이미술관 대표는 “국내 전시장의 올해 외국인 관람객 목표는 50만명”이라며 “2015년 해외 6곳에 분관이 들어서면 연간 200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뮤지엄 한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박물관·미술관 상설 전시장 입장료가 무료인 데 반해 트릭아이미술관은 비싼 편이다.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이다. 하지만 해외 명화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데다 작품을 만지고 사진 찍고 올라탈 수 있는 3D형 체험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연일 관람객들이 북적이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02-3144-63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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