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바로 나와 같은 공군대북공작 수행원들이다. 공군대북공작 수행원은 6·25전쟁 발발 후 남북한의 긴박한 대치 속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목숨 바쳐 국가를 위해 적지에 침투해 임무를 완수하고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참전용사들이다.

그동안 많은 참전유공자와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보상과 혜택을 받았지만 공군대북공작 수행원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작수행원들에 대한 보상심의위원회의 불공정한 심의 조사와 부실한 준비 서면 제출로 서울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연이어 기각 처리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북공작 수행원들은 분노를 넘어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 제1조의 목적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호국정신 고양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이 남파한 김신조 무리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공군 첩보대는 1968년 4월부터 1972년까지 31명의 북파공작원을 모집, 김일성궁 폭파 훈련을 비밀리에 실미도에서 강행했다. 그러나 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으로 해산 문제가 제기되자 북파공작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무기고를 급습하고 탈취한 무기로 공군 현역관들을 사살하는 폭동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실미도’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진실 규명의 여론이 비등해졌다. 공군 당국이 36년간 베일에 감추고 있던 북파공작원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유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승소 판결이 났다. 이로써 2008년 10월까지 북파공작원 유가족들에게 보상금과 위자료를 합쳐 1억8600만원씩 배상해 주었다. 이에 반해 공군대북공작 수행원들은 아직까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명예 회복과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공군대북공작 수행원들은 냉전시대에 나라에 몸 바친 유공자다.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대북 공작 활동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일생 동안 무주택자로 지내는 등 가난 속에서 세월을 보내다 보상 결과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먼저 운명한 동지와 유가족들에게 그저 죄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루빨리 공군대북공작 수행원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길 고대한다.

정영훈(서울 구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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