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최경환표 내수 살리기의 성공조건 기사의 사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경제정책 구상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저성장, 저물가,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 등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을 따라갈 수 있다는 진단에 공감한다. 지금은 한겨울(부동산 침체기)이니 한여름(활황기)에 입었던 옷(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을 바꾸겠다는 것이나 가능한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는 처방도 옳다.

주목되는 것은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려 내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최 후보자는 며칠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내수의 구조적 부진이 한국경제가 침체에 빠진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투자와 배당, 임금분배 등을 통해 (소득이) 가계 쪽으로 흐르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내 수출 대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명박정부의 고환율 정책과 감세 정책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멍석을 깔아준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투자하는 기업들은 업어줘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려에도 설비투자는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10대 대기업이 쌓아놓고 있는 사내유보금은 471조원에 달한다. 기업들이 투자는 하지 않고 돈놀이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죽했으면 대기업 사내유보금에 과세하자는 주장까지 나올까.

올 봄 도요타, 혼다,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간판 대기업들은 줄줄이 임금을 올렸다. 무제한적인 돈 풀기와 이에 따른 엔저로 이득을 봤으니 근로자 임금을 올려 내수 살리기에 동참하라는 아베 신조 총리의 채찍질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에서 근로자가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가져가는 노동소득분배율이 1997년 75.8%에서 2011년 68.2%로 7.6% 포인트 하락했다. 근로자들은 가난해졌고 기업들만 배를 불린 결과다. 1997년 외환위기 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늘어나는 등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를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역대 경제수장들처럼 최 후보자도 보건의료 교육 금융 관광 등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를 들고 나왔다. 문제는 의욕만으론 빗장을 풀기 힘들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마다 서비스산업 육성을 외쳤지만 기득권층의 반발과 부처 이기주의,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얽혀 10여년째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박카스를 약국이 아닌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데도 약사회 반발 때문에 20년이나 걸린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영리의료법인 설립은 의사들의 반대에 몇 년째 겉돌면서 태국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이 외국인 환자 유치 경쟁을 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구경만 하고 있다.

서비스업 규제만 제대로 풀어도 최 후보자는 박수받을 수 있다. 수출 대기업에 쏠려 있는 한국경제호를 바로 세우고 성장엔진을 다시 돌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이후 캐시카우(현금줄)를 찾지 못한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감소가 말해주듯 ‘삼성 없는 대한민국’도 준비해야 할 때다. 내수산업에서도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일류 회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가계의 지갑을 열려면 사교육비와 주거비,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 불안한 노후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등 정책 패키지가 함께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수입이 늘어도 지출이 많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대통령’이라고 무한 신임을 받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남덕우 전 총리의 생전 좌우명은 논어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었다. 소인은 서로 같다면서 화합하지 못하고,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화합한다는 뜻이다. 최 후보자는 정·관계를 두루 거친 데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다. ‘만사경통’(모든 일은 최경환으로 통한다)이 경제를 그르치지 않도록 스스로 유념하고 또 삼가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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