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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전정희] 헤게모니의 교회언어

[삶의 향기-전정희] 헤게모니의 교회언어 기사의 사진
한국 교회가 시민사회로부터 몰매를 맞고 있다. 시민사회가 교회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되레 인터넷 댓글을 중심으로 한 시민의 힘이 교회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 사태를 통해서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보여준 부덕(不德)이 시민사회에 ‘무력한 예수’를 만들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언어로 적절하게 설명하기 힘든 궁극적인 진리와 시련이 있는데 부덕에 놀란 시민사회가 하나님 나라 얘기를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는다.

不德이 무력한 예수 만들어

덕은 불립문자(不立文字)다.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뜻이다. 우리의 탁월한 이야기꾼 예수는 비유를 사용해 하나님 나라를 전달했다. 겨자씨와 포도원 품삯 같은 비유다. 당시 이 비유를 듣던 사람들은 예수 얘기를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 발끝에도 못 미치면서 하나님 나라를 단언한다. 아니, 그 궁극을… 예수도 단언하지 않았는데 어찌 인간의 언어로 저리 세밀히 묘사한단 말인가. 동정녀 마리아와 매춘부 막달라 마리아를 ‘지목’하는 이분법적 단언은 교회 지도자 자신의 권력 강화 언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시민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법과 정치에 의한 강제적인 힘이 그 첫째다. 다른 하나는 시민이 동의하고 추종하며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시민사회의 숨은 힘이라고 했다. 이 숨은 힘을 그람시는 헤게모니라고 말한다.

헤게모니란 일반 시민이 사회 지도층의 문화나 의식을 모방하도록 만드는 숨은 힘이다. 매스미디어, 예술, 대중문화 등을 통해 전달된다.

교회는 말씀을 가지고 헤게모니를 쥐는데 서툴다. 시민이 교회 문화나 의식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예수의 비유와 같이 대중을 설득할 만한 이야기(storytelling)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등과 같은 비이야기적 언어를 헤게모니라고 착각한다. 시민은 예수천국 불신지옥 안에 담긴 ‘하나님 나라’를 마음속에 담으려 하지 않는다. 헤게모니는 변화하고 늘 발전되는 아이디어이나 전도자는 그 심판의 언어만을 고집하며 세상을 끌어가려 한다.

시민사회 움직이는 숨은 힘

한국엔 100년 이상 된 교회가 900개가 넘는다. 그런데 그런 개교회에조차 ‘이야기’가 없다. 설령 100년사를 정리한 교회가 있다 하더라도 행사 기록과 목사·장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편년체다. 편년체에서는 시민이 추종하고 따르는 힘을 가진 언어가 나오지 않는다. 한 예로 저기 안동 일직교회 종지기 출신 아동문학가 고 권정생 선생과 같은 이의 청빈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한국 교회가 잘 모른다. 시민은 아는데도 말이다. 평생 몇 벌의 옷이 전부였고 죽을 때 유산과 인세를 굶는 어린이를 위해 맡긴 ‘경수 집사’이길 원했던 분이다. 경수는 권정생의 아명이다.

한국 교회는 권정생의 삶과 작품 ‘몽실언니’ ‘강아지똥’에 녹아 있는 말씀 헤게모니를 외면했다. 한국작가회의 등이 ‘경수 집사’ 부분을 지우고 기릴 뿐이다. 그러니 ‘예수 보혈’이 길거리 전도 피켓이 됐다. 이제 한국 교회가 시민사회를 향한 이야기를 쓸 때가 됐다. 올해가 선교 130년이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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