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신혼집 장만은 남자 몫? 기사의 사진
“에구구, 아들 낳고 목에 힘줬던 나 자신이 후회막급이야!” 어제 저녁 퇴근길 지하철에서 귀가 번쩍 뜨였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들의 대화를 10여분 경청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데려왔다. 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데 전세도 너무 비싸서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자는 살림과 예단을 준비하지만 집값에 댈 것이냐. 예단비도 절반은 돌려주지 않느냐. 남녀평등이라면서 왜 신혼집 마련은 남자들이 ‘독박’을 쓰느냐.

20대 중반을 넘어선 아들만 둘이니 그녀들의 발등의 불이 얼마나 뜨겁고 절박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래, 정말 왜 그런 거야? 예전에는 결혼하면 신부가 신랑 가문의 일원이 됐으니 시댁에서 모든 것을 책임졌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잘 키운 아들은 사돈집 자식’이라는 요즘 아닌가. 얼마 전 만난 30대 남성은 “결혼기념일 선물을 하지 않았다가 쫓겨날 뻔했다”면서 “맞벌이고, 나도 결혼 당사자인데 왜 남자만 선물을 해야 하느냐”고 억울해 했다. 삼종지도(三從之道) 시대의 전업주부라면 모를까 같이 경제활동을 하는데 남편은 선물하고 아내는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이 6월 남녀 대학생 5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데이트 비용도 남학생(4만7548원)이 여학생(3만190원)보다 많이 쓴다. 부모에게 용돈 타서 쓰는 같은 처지인데 여자라서? 이유가 안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 누리는 이런 관습적인 기득권들이 사회에 남아 있는 남녀 차별적 요소들을 더 공고히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8일 발표한 ‘여성 인력 활용에 대한 기업 인식 조사’를 보면 기업들의 여성 인력 채용은 여전히 미진하다. 신입 직원의 성비가 75대 25로 남성이 크게 앞섰다. 기업들은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업무 공백 및 경력단절’(44.6%)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손을 내젓고 있다. 모성보호법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시간 외 근무나 야근을 제한하고 있다. 또 산전후 휴가 3개월에 1년까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이런 상황이 예견되는 조건의 근로자를 뽑기 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여성 인력의 적극적 활용이 필수요소”(대한상의 전수봉 조사본부장)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조언은 당장 일할 사람을 뽑는 인사권자들에게는 잔소리일 뿐이다.

여성들도 데이트 비용 똑같이 내고, 기념일 선물은 주고받고, 결혼할 때 집값과 살림마련 비용의 절반을 내놓자. 그리고 출산한 뒤 당당히 이렇게 요구하자. “엄마인 내가 10개월 동안 내 몸 안에서 키웠고 산휴 3개월간 모유를 먹였으니 이제 앞으로 1년은 아빠인 당신이 키우세요.” 육아휴직은 고용보험에 6개월 이상 가입한 여성 근로자와 배우자인 남성 근로자 중 1명이 1년 범위 내에서 신청할 수 있다. 육아는 여성 몫이라는 관습 때문에 여성 근로자가 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 근로자는 임신 기간 모성보호를 충분히 받고 산전후 휴가 3개월을 푹 쉬자. 남성 근로자는 1년의 육아휴직을 받아 아이를 잘 키우자. 이렇게 한다면 가임기간에 있는 여성과 남성의 근로조건은 동등해질 것이다. 그래서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취업과 승진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출산율도 꽤 높아질 것이다.

덧붙임=이 글을 본 제 아들이 엄마가 전셋값 아끼려고 육아휴직하고 자식 기르게 했다고 투덜거린다면 군밤 한대 먹여 주겠습니다. 그리고 아들 잘못 키운 엄마로서 반성하겠습니다.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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