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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서승원] 일본의 군사화와 민주주의

[글로벌 포커스-서승원] 일본의 군사화와 민주주의 기사의 사진
2014년 7월 1일. 일본은 자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큰 획을 그었다. 아베 신조 정권이 각료회의에서 ‘해석 개헌’, 즉 그동안의 헌법 해석을 변경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법 9조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염원해 온 헌법 9조 개정이 반대 여론에 부딪혀 당장 여의치 않자 각료회의 결정이란 방식으로 우회한 셈이다. 또 손바닥으로 해를 가렸다.

각료회의 직후 여느 때 이상으로 엄숙한 분위기의 기자회견장. 아베 총리 옆에는 그림 자료가 한 장 세워져 있었다. 주변국(한반도) 유사시 일본인들을 구출하는 미군 수송선이 적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 자위대가 그 수송선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행사한다는 내용. 일본 헌법에 국민의 생명을 지킬 책임을 포기하라는 말은 절대 쓰여 있지 않다는 총리의 친절한 설명이 뒤따랐다. 집단적 자위권으로 미·일 동맹이 견고해질 것이며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위험성은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는 석연치 않은 말꼬리를 날리며.

아무튼 패전 이후 역대 정권이 금과옥조처럼 고수해 온 헌법 해석은 180도 뒤집혔다.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 한해서 무력을 행사한다는 전수방위 원칙도 깨끗이 지워졌다. 여기서 헌법 해석 변경으로 입헌주의가 훼손됐다거나 군사대국화가 본격화됐다든가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상투적인 비판을 가할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일본이 갈수록 군사적 수단을 절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우라 도시아키 아사히신문 논설위원도 ‘강병(强兵)’의 부활을 경계한다. 메이지 시대의 부국강병 노선은 패전 이후 부국만 남겨져 있었다. 나라의 힘이 어스름해지는 저녁 무렵에 다다른 일본이 부국을 유지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다시 강병을 꾀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우익세력 나름의 절박함을 느낀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다는 행위가 동아시아 안팎에 군비 확대라는 공기를 팽팽하게 할 소지도 다분하다.

또 다른 우려는 일본의 민주주의가 과연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조너선 밀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우익 강경파 정치인이라든가 선정적 문구를 배설하는 우파 성향 평론가, 그리고 소셜미디어상의 젊은 네트우익은 소수에 불과하며 그 영향력도 과장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중도적이며 과거사 문제나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균형 있고 실용주의적인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일본 민주주의를 깊이 신뢰한다. 한 일본인 학자도 일본이 헌법과 미·일 안보를 하나의 세트로 하는 미들파워 외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일본 민주주의를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는 물론 호전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곧 평화주의였다.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일본 국민들은 반전(反戰) 의식과 반(反)국가주의라는 규범으로 무장하고 그동안 우익세력의 국가주의 행보에 여러 차례 제동을 걸어 왔다.

집단적 자위권에 반대하는 1만명 이상 참가한 데모가 수십년 만에 도쿄에서 일어났다.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양심적 지식인들이 ‘전쟁을 시키지 않는 1000명 위원회’를 조직하여 집회 및 행동을 이끈다. 내건 슬로건은 평화헌법 지키기. 아베 정권의 거사가 히틀러 정권의 전권위임법과 유사하다거나 야스쿠니 사상, 징병제가 곧 부활하여 젊은이들을 전장에 내몰 것이란 외침이 도로 위에서 부서진다.

한데 이들은 너무나도 외로워 보인다. 일단 기울기 시작하면 모두 다 기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지금 일본이란 극장엔 미국이 감독, 우익 정치세력과 관료기구가 주연, 대다수 유권자가 관객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극장 밖에는 목청이 갈라지도록 외쳐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눈에서 하얀 불꽃이 뚝뚝 떨어진다.

서승원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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