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용수] 위안부 문제의 중국 책임론 기사의 사진
2007년 미 연방 하원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HR-121)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미주 한인동포들이 몇 년 동안 의원들에게 집요하게 편지를 쓰고,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초청해 의회에서 증언토록 한 결과였다. 그런데 당시 전범국가 일제에 한국보다 더 큰 피해를 당했던 중국계 재미 중국인 동포들은 잠잠했었다.

필자는 친분이 있는 중국역사를 전공한 중국계 미국인 리우 박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국은 이길 힘이 없을 때는 힘이 길러질 때까지 참습니다. 그러나 힘이 생기면 그 때 나섭니다. 앞으로는 중국이 일본을 이길 힘이 있기 때문에 나설 겁니다.” 그의 말대로 그 후 7년이 지난 현재는 중국의 목소리가 약간씩 들린다.

중국이 잠잠했던 데는 전후 중국 지도자들의 책임도 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는 일제 전범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말했으며, 1949년 집권한 공산당 정권 역시 1000여명이 넘는 일제 전범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않았다. 당시 전범재판을 했던 연합국 정권 가운데 한 사람도 사형에 처하지 않은 경우는 중국 공산당이 유일했다고 한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중국의 역사인식은 매우 잘못되었다. 유대인은 과거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600만명이나 학살당한 이후 나치 정권이나 나치 정권에 협력한 사건은 용서를 할지라도 그 일을 저질렀던 범죄인들을 끝까지 찾아내 정의의 심판대에 세운다는 원칙을 세웠다. 국민적인 용서와 죄를 범한 죄인에 대한 심판은 다르다고 보았다. 용서가 사랑이라면 죄인에 대한 심판은 정의다. 정의 없는 사랑은 불공평을 낳고, 사랑 없는 정의는 삭막하기 쉽다. 따라서 사랑과 정의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수장 아돌프 아히만 장군의 거주지를 끝까지 추적해 1960년 아르헨티나 은신처에서 그를 붙잡아 이스라엘로 데려가 법정에 세운 뒤 처형했다. 프랑스의 마지막 전범 모리스 파퐁이 8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검찰에 기소되어 13년 만에 재판에 회부된 일도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독일 정부에 피해 보상을 청구해 받아낸다. 아울러 독일 나치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의 대도시마다 대학살 박물관을 만들었다.

미국에 유대인 인권단체 위젠탈센터의 랍비 쿠퍼는 필자에게 일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은 북한에 납치당한 일본 여성 몇 명에 대해 국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데, 위안부 문제도 사죄하지 못하는 그들이 그럴 자격이 있는가?” “일본에서는 악한 전범들이 아직도 국가적인 존경을 받는데, 그 나라 어디에서 정의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독일과 일본은 동일한 전범 국가인데 왜 유독 독일만 과거 역사를 철저하게 사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독일인과 일본인의 민족성 차이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독일 정권에 대한 유대인의 집요하고 강력한 ‘정의 세우기’ 투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의 아베 정권이 고노 담화를 왜곡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망언과 역사 뒤집기를 일삼는 데에는 중국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중국 지도자들이 전범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역사인식은 평화주의자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 오늘의 무례한 일본을 낳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힘 있는 자에게 약하고 힘 없는 자에게 강하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제라도 중국이 뻔뻔한 일본에 역사의 진실을 알려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건 매우 다행스럽다. 이로 인해 독일이 피해국에 사죄하고 보상함으로써 전 유럽이 사랑과 정의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일본도 피해국에 사죄하고 보상함으로써 전 아시아가 사랑과 정의를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한다.

현용수 쉐마교육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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