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체불과 부당노동행위를 우선 없애라 기사의 사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가계소득 증대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수 부진 이유에 대해 “중산층 소득이 뒷받침 안 되기 때문이다. 임금이 받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는 내수 회복이 어렵다”고도 했다. 백번 옳은 진단이다. 그러나 구체적 해법은 최저임금 인상, 임금 인상과 배당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조세정책을 검토하는 정도에 그친다.

문제인식은 단순하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의 몫으로 돌아가는 노동소득분배율의 저하 경향이 뚜렷하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97년 75.8%에서 2011년 68.2%로 7.6% 포인트나 하락했다.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증가율을 비교해봐도 1985∼1995년중 연평균 8.6%와 7.1%였으나 1996∼2007년에는 3.7%와 8.1%로 역전되더니 2008∼2012년엔 2.8%와 11.2%로 격차가 4배로 벌어졌다. 기업은 부자가 됐지만 대부분 가계는 부채에 시달리거나 쓸 돈이 모자라 우리 경제는 만성적 수요부족 현상을 빚는다. 부자들이 50만원을 벌면 은행 계좌에 쌓이지만 빈곤층이나 차상위층에게 추가 소득 50만원이 생기면 거의 모두 소비된다. 그렇지만 정부가 어떻게 임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을까.

정부로서는 우선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균형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의 힘을 빼고 가계, 즉 노동자와 중소상공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임금체불,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 위반 및 노조 설립 방해 등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공급과잉 자영업에 대한 진입 규제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뉴딜정책도 이런 기조 위에서 시행됐다. 대공황 기간에 미국의 산업생산이 반 토막 났고, 실업률이 25%에 달했던 1935년 뉴딜 개혁이 시작됐다.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융자본과 재벌에 대한 독과점 규제를 강화했고, 부당노동행위 처벌 제도를 도입해 노동조합의 결성을 지원하는 한편 방대한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일련의 ‘반기업적’ 제도들은 오히려 미국경제를 살려냈다.

물론 정부 일각에서도 이런 균형자 역할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임금체불 사업주와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런 조치들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부 전문가는 예컨대 3개월 이상 체불 사업장은 자동 폐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민경제에 단기적 충격은 있겠지만 그런 기업은 망해야 새롭고 건전한 기업으로 대체된다. 연간 1조2000억원에 이를 정도의 심각한 임금체불은 거의 우리나라에만 있는 사회악이다. 한국 사업주만 유독 사기꾼이 많아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는 예사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운전자도 미국 가면 규정 속도를 엄수한다. 딱지를 받으면 법정에 출두해야 하고,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당노동행위의 폐해와 이에 대한 방조도 심각하다. 부당노동행위는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지만 노조 가입을 방해하는 내용의 전화 녹취록 같은 명백한 증거를 제출해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리기 일쑤다. 2000년 이후 부당노동행위 조항이 담긴 노동조합법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 중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단 한 명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10.3%)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원인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불평등은 기업과 가계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그 소속 근로자, 대규모기업집단 간에서도 심화되고 있다. 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 차별 해소와 임금격차 축소 등의 과제를 추진해야 하지만 정부 혼자 성과를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노사정위원회 등 이해당사자들의 각종 협의체 운영과 각 주체의 양보정신이 필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와 사법부만 놓고 볼 때 체불임금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 사업주가 크게 늘어날지 여부는 그들에게 소득 중심의 성장 모델로 옮겨가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가려줄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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