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성] 일본의 이상한 역사인식 기사의 사진
요즈음처럼 정신적으로 우울한 우리네에게 집요하게 심사를 건드리는 사건이 있다. 위안부 강제 동원 부정 등과 관련된 일본 극우집단의 행태다. 가만히 보면 일본 극우집단이 보여주는 행태는 일단 두 가지로 압축된다. 있는 것은 없다 하고 없는 것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이 기원이나 연원 따위에 집착하는 습성을 신화를 활용하는 그들의 역사서 찬술의 한 양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화는 단순하게 황탄한 상상의 산물이 결코 아니어서 전승집단의 오랜 역사이고 정치 이데올로기이며, 종교이고 문학이며, 전승민족의 삶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그 자체이니 고대 역사서 첫머리에 나타난 신화의 기술방식은 특정 민족의 역사 인식에 대한 한 측면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사례가 된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온전한 국가의 성립을 늦게 경험해 한국과 중국을 의식한 역사 찬술이 필요했다. 그 결과 인간 세상을 창조한 내력을 전하는 창세신화가 일본의 ‘일본서기’나 ‘고사기’ 첫머리에 등장하게 되었다. 창세신의 내력을 근본으로 삼아야 자기네 민족과 국가의 연원이 대단히 오래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었기에 택한 불가피한 방책이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고 하는 창세신의 등장에 이어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라고 하는 태양신을 후손으로 등장시키고 이를 다시 일왕가(日王家)의 직계 선조신으로 견인해 자기네의 긍지를 드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일본 왕실의 오랜 내력이 인간 세상을 창조한 그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려는 의도인 셈이다.

인간 세상을 창조한 창세신에서부터 직계 선조신을 단일한 계보로 연결하는 신화적 발상은 온전한 국가를 건설한 시기가 이웃 민족보다 늦거나 온전한 국가를 건설한 경험이 없는 민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온전한 체제를 갖춘 나라를 건설한 내력이 자체로 오래되었고 국조의 혈통이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객관적 역사 기술로 남아 있다면 굳이 멀리 가서 창세신의 후예를 왕실의 선조신으로 견인하는 무리한 전략이 필요치 않다. 일본의 경우는 인간 세상의 창조 과정을 관찬 역사서의 첫머리에 두었으니 참으로 독특한 역사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오래된 연원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일본의 성향은 한국과 중국을 통해 고대와 중세의 문화를 받아들인 역사적 사실이 불편해서 그랬을 수 있다. 자기네 민족의 기원을 소급하는 전략이 요령을 갖춘 탓에 일부 효과를 거둘 수 있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일본 민족 자체의 이러한 콤플렉스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요상하기 이를 데 없는 역효과를 가져왔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일왕가의 혈통이 단 한번도 단절된 적 없이 하나로 이어졌다는 이른바 ‘만세일계(萬歲一系)’라는 허구적 역사 서술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기원전 660년경 일왕 진무로부터 26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왕가의 혈통이 단 한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는 기이한 역사 논리가 버젓이 역사적 사실로 변신해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비롯해 한국과 중국에 대한 비인도적 만행 등에 아베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창세의 신을 일왕가의 직계신으로 소급하는 역사 기술방식은 없던 일은 있다고 하는 데 활용하고, 일본이 자행한 근현대사의 만행이 분명한 사실임에도 자기네끼리 검증을 한다고 난리를 떨고, 자기네들끼리 미리 정해놓은 당연한 그 결과를 근거로 없던 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전범국가의 죄과는 야릇한 민족주의로 포장하고 집단자위권 운운하며 군사 야욕을 드러내는 행태 역시 이러한 비상식적 역사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서기’는 지금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여전히 손질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없는 것은 있다 하고 있는 것은 없다 하는 일본 극우정권의 몹쓸 유전자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역사는 언제든지 뒤틀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고착화되는 그 순간 동북아시아 문명권의 공존번영은 영원히 공허한 구호로만 남을 것이다.

박종성(방송통신대 교수·국어국문학과)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