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미녀응원단 다시 온다는데 기사의 사진
브라질월드컵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 열린 지난 13일(현지시간) 교황청은 전 세계에 메시지를 하나 던졌다. 지구촌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전쟁을 이날 하루만이라도 중단하자는 것이었다. 교황청은 트위터에 ‘평화를 위한 중단’이라는 해시태그 ‘#pauseforpeace’를 달고 이같이 제안했다. 교황청은 “스포츠 행사는 전쟁이 중단되는 평화의 시간”이라고 설파했다.

스포츠 행사를 통한 ‘휴전’의 시초는 기원전 9세기 고대 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올림픽에 참가한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는 경기가 열리는 동안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올림픽 휴전’을 선언했다. 오늘날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이 같은 평화의 정신을 살려 올림픽 기간 중에는 휴전할 것을 촉구하는 ‘평화 이니셔티브’를 주창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스포츠는 전쟁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는 2005년 독일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조국에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안겼다. 소감을 말해 달라는 말에 그는 아프리카 전역으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고 “단 1주일만이라도 좋으니 전쟁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애절한 한마디에 국민들은 울었다. 내전을 벌였던 정부군과 반군 역시 크게 감동했다. 이들은 잠시 총을 내려놓은 채 휴전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총성이 멈추면서 2년 뒤 거짓말 같이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스포츠가 정치와 연결돼 평화를 이끌어낸 경우도 있다. ‘핑퐁 외교’라 불린 1970년대 미·중 관계 정상화 뒤에는 탁구가 있었다. 2.7g에 불과한 탁구공이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뛰어넘어 냉전시대의 종식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는 꽉 막힌 외교관계를 풀어주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에도 그런 기회가 수차례 있었다. 남북은 사상 첫 개막식 동시입장이 이뤄진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무려 8차례나 국제종합대회에서 동시입장을 연출해 냈다. ‘KOREA’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남북의 하나됨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일회성 이벤트에 그쳐 화해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는 9월이면 남북이 또다시 그런 기회를 맞게 된다.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미녀응원단’을 앞세워 남한 땅을 밟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 파견된 미녀응원단은 이제 남북 체육 교류의 상징이 되고 있다. 288명을 파견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는 조명애가 북한미녀 신드롬을 일으켰고, 124명이 왔던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때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 이설주가 응원단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비록 북한이 한편에선 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은 분명 경색된 남북 관계를 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북한도 지난 7일 이례적으로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당면한 북남 관계를 개선하고 민족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참가와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 실무 접촉도 1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6년5개월여 만에 성사된 이번 체육 회담을 서로 통 크게 제안하고 통 크게 받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나친 신경전은 양측에 이로울 게 없다.

이런 점에서 응원단 체류비 지원은 세 차례의 전례처럼 남측에서 부담하는 것이 좋겠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이후 끊어진 남북 동시입장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고대 올림픽 휴전이나 교황청의 전쟁 중단의 의미를 되새겨 남북이 대회 기간만이라도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는 상징적인 선언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지루한 대결 양상에서 벗어나 인천대회가 남북 화해와 교류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 지구촌의 눈과 귀가 다시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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