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글로벌포커스

[글로벌 포커스-오승은] 빈 필하모니 사라예보 공연

1차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해 공존 모색하다… 먼저 화해할 대상은 보스니아 내부당사자인데

[글로벌 포커스-오승은] 빈 필하모니 사라예보 공연 기사의 사진
지난 6월 28일, 1차 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일을 맞아 사라예보 국립 도서관에서 열린 빈 필하모니 공연 소식을 들으면서 못내 착잡했다.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청년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당한 합스부르크제국의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100주년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단다. 한국으로 치자면 한국을 강제 합방한 일본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것을 사죄하기 위해 일본 국립 오케스트라를 서울로 불러들여 국립 도서관에서 공연한 셈이다. 어째서 이렇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사가 치러진 것일까.

1995년 이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실질적인 분단 상태이다. 미국이 주도한 데이튼 평화협정에 따라 보스니아의 영토는 무슬림이 주도하는 ‘보스니아 연방’ 49%, 보스니아-세르비아계가 주도하는 ‘보스니아-세르비아 공화국’ 51% 비율로 양분되었다. 1국가 2체제의 분단 상태다. 데이튼 평화협정의 취지는 일단 2체제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사자들의 주도하에 1체제로 통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최악의 폭력을 겪은 양 당사자들 간의 통합이 국제조약이 명시하는 대로 될 리 만무하다는 것은 한반도의 분단 경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나 보스니아 무슬림 쪽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인 보스니아-세르비아인과의 공존과 화해는 자신들의 상처를 들쑤시는 일로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거기다 보스니아 무슬림 연방과의 통합보다는 독립국가 수립을 더 선호하는 보스니아-세르비아 공화국 정치인들의 갖가지 행태로 보스니아 정치는 사실상 20년째 교착 상태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보스니아 무슬림의 좌절과 분노는 역사 수정주의를 주요 출구로 표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침략제국의 지배자가 아니라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로 둔갑했다. 그를 저격한 보스니아 청년 프린치프는 세르비아계란 이유로 남슬라브인의 통일 국가 ‘유고슬라비아’를 수립하고자 싸운 영웅에서 평화주의자인 황태자를 암살한 세르비아 테러리스트로 격하되었다. 프린치프가 황태자를 저격하지만 않았어도 1차 대전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란다. 1990년대 분출하는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로 인해 구(舊)유고슬라비아에서 어느 누구보다 많은 피해를 입은 보스니아 무슬림의 고통과 좌절은 이렇듯 굴절되어 세르비아와 관련된 모든 역사의 부정과 죄악시로 나타나고 있다.

보스니아-세르비아인의 수정주의 역사관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긴 매 한가지이다. 세르비아 측은 공동 국가 유고슬라비아 수립을 외친 프린치프를 세르비아의 민족영웅으로 축소 해석하여 6월 28일을 전후해 대대적으로 띄우기에 나섰다. 프린치프가 원했던 것은 기독교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과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 서로 평화롭게 사는 ‘공존의 공간’이었지,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주장하는 배타적 ‘고립의 공간’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보스니아의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은 실제 일어났던 과거의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정세에 의해 영향을 받은 정치적 해석일 뿐이다. ‘원한의 역사관’으로 헤쳐 나가기엔 보스니아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이 너무나 절박하고 복잡하고 또 산적해있다. 한 사회가 자신의 역사를 인식하고 표상하는 방식은 결국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사회와 국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방식과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아무리 미워도 보스니아의 무슬림과 세르비아인은 싸워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니라, 보스니아라는 운명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정치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먼저 화해할 대상은 외부 지배세력 오스트리아가 아닌 그 외부세력에 함께 시달린 보스니아 내부의 두 당사자들이리라.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이 주는 교훈은 거기 있을 것이다.

오승은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