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재계 제갈공명’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한국은 지금 숨죽인 경제… 문제는 심리다” 기사의 사진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한국을 이끄는 대표기업 사령탑들이 병환 중이거나 감옥에 가 있는 등 제 기능을 못하는 게 안타깝다”며 “경제는 심리인데 기를 살릴 오너들이 경제에 기여한 데 대한 감안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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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장내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한류 열풍으로 인기 절정인 '천송이 코트'를 중국에서는 사고 싶어도 못 산다고 한다. 바로 액티브 엑스(인터넷 브라우저에서 공인인증서를 실행하기 위해 설치해야 하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액티브 엑스, 아주 액티브(Active)하게 엑스(X) 쳐주셨으면 한다." 얼음 대통령도 '허허' 웃게 만든 사람은 이승철(55)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다. 기업들 입장을 대변하고 정부에 쓴소리하는 게 본래 경제단체 역할이지만 이 부회장은 누구보다 거침없는 발언과 책략으로 '재계의 제갈공명'이란 소리를 듣는다.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처방을 준비 중이다. 핵심정책 중 하나는 대기업에 쌓여 있는 유보금을 가계로 흘러가게 해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을 찾은 이유다.

-얼마 전 한국경제가 16강에서도 탈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던데.

“기업인도 그렇고 정치인들, 관료들 심지어 국민들도 나른하게 사는 것 같다. 열정도 없는 것 같다. 큰 문제도 없지만 그렇다고 큰 욕심도 없다. 우리 경제를 보면 나른하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이러다가 남들이 좇아오는 상황에서 조만간 역전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잔잔한 돌이라도 던져서 충격을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기자간담회를 하자고 했다. 위기를 위기로 못 느끼고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앞으로도 잘되겠지 하는 막연한 장밋빛 전망을 갖고 있는데 남들이 봐도 잘될 것 같지 않으니 문제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데다 환율까지 크게 떨어져 기업 경영환경이 좋지 않다.

“환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수출이 잘되거나 수입이 안 되는 경우다. 과거에는 수출이 너무 많이 돼서 경상수지 흑자가 생기고 환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수입이 안 돼 달러가 남아서 환율이 떨어진다. 수입이 안 되는 이유는 내수경기가 죽어 있기 때문이다. 경기불황의 사인이다. 불황을 고치지 않고 환율을 올리거나 내릴 생각을 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원인이 불황형 환율 하락이기 때문에 불황을 빨리 고치는 게 중요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화끈한 경기부양책을 예고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이 소비를 진작하거나 재정을 푼다거나 금리를 낮추는 것을 해봤는데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느낀 교훈은 기업활동을 자극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규제를 개혁하고 기업을 북돋워서 경제를 살려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경해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가계소비 진작한다고 해본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인데 얼마나 되겠는가. 그나마 체력 있는 기업들에 경제 활력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 그 적임자가 최경환 경제부총리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경제팀을 아우를 수 있는 경제팀의 주장이다. 이번에 월드컵 축구를 보니 주장이 없으니 무너지더라. 행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국회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현역 3선 의원이 부총리를 하면 국회가 상대적으로 정책에 대해 백업을 잘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행정부 내의 팀워크, 입법부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최 부총리는 괜찮은 카드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새 경제팀에 어떤 주문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이 부회장은 일어나서 벽에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에 미리 적어놓은 글과 숫자들을 보며 설명했다. 그가 진단한 한국경제 현주소와 해법은 ‘숨죽인 경제, 문제는 심리다’.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프레임은 잘 잡았다. 문제는 누가 할 것인가다. 가계와 정부는 지금 여력이 부족하다. 경제를 살리려면 첫 번째로 경제인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숨죽인 경제, 나른한 경제다.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들이 현장 방문을 해서 기업인을 격려하고 경제인에 대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 현장을 방문해 보면 기업들이 하려는 프로젝트가 많다. 그 프로젝트들을 빨리 파악해서 도와줘야 한다. 연구·개발(R&D) 투자와 상업용 건설투자, 서비스산업 진출 같은 기업들의 구체적 프로젝트를 모아서 애로사항을 풀어주고 기업인들을 북돋워줘야 한다. 두 번째는 투자를 늘리기 위해 세금 내리고, 규제 풀고, 인건비 내리고, 정책속도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면서 투자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기업가 정신이 국내에선 죽어 있고 해외에선 살아 있다. 해외투자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세 번째는 국민의식인데 지난 몇 년간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빅 이즈 배드, 스몰 이즈 굿(Big is bad, Small is good)’이라는 인식이 많다. (대기업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크고 작은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해외에 나가서 싸울 수 있는 핵심기술, 마케팅 능력, 디자인 능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우대해줘야 한다.”

숨죽인 경제를 살리는 그의 해법도 명쾌했다.

“개인이 왜 집을 안 사느냐. 돈 없어서, 금리 높아서가 아니다. 기업들이 투자 안 하는 것도 미래를 좋게 안 보기 때문이다. 가계도, 기업에도 미래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여줘야 한다. 브라질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 보니 축구도 심리고, 경제도 심리다. 우승후보가 어떻게 7대 1로 질 수 있느냐. 월드컵 보니 골키퍼와 감독이 잘해야 하더라. 경제정책도 필요하지만 심리정책도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고환율 정책과 감세 정책으로 이득을 많이 봤다. 그런데도 투자는 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기업 사내유보금에 과세한다고 하겠는가.

“477조원(지난해 말 기준)은 10대 그룹 상장사들의 사내유보금이다. 부채가 사내유보금의 두 배다. 지금도 돈 빌려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477조원 중 실제 155조원 정도가 현금이고 나머지는 공장, 기계, 건물, 재고, 창고, 지적재산권 이런 것들이다. 10대 그룹의 상장기업 1년 매출액이 1250조원인데 155조원이라면 1.5개월치 현금을 갖고 있는 거다. 재무적으로 보면 보통 기업들은 두세 달치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결코 많은 게 아니다. 우리나라 가계가 갖고 있는 유보금 6000조원과 비교하면 많은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내유보금에 과세한다고 하면 배당을 할 텐데 그 방법은 그리 효과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상장기업 지분구조를 보면 외국인주주 비율이 33%다. 기관이 16%, 정부 3%, 법인 24%, 개인 23%인데 개인 지분 중 절반은 대주주이다. 배당했을 때 실제 가처분소득이 올라가는 개인은 많아야 15% 정도이고 외국인 주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 오히려 국부 유출이 되는 거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이 60%다. 이 구조에서 굳이 배당정책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 배당과 재투자에 대해 현상을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내수를 살리겠다고 자국 기업들에 임금을 올리라고 독려하지 않았나.

“일본은 근속기간이 긴 대신 임금이 낮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대비 근로자 임금이 일본보다 50% 높다. 지금도 높은데 임금을 더 올리면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휴대전화를 만들 듯이 밖으로 자꾸 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최경환 경제팀이 내세우는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려서 소비 진작하겠다는 것이 효과가 없다고 보는지.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수요진작과 공급확대다. 수요를 늘리는 방법은 금리인하, 재정확대, 소득증대인데 반드시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공급을 늘리는 방법은 부작용이 없다. 1980년대 이후 많은 나라들이 공급확대 정책을 주로 쓰면서 규제개혁과 민영화가 글로벌 트렌드가 됐다.”

-박근혜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개혁 등 어젠다 세팅은 잘한 것 같은데 백화점식으로 늘어놓은 것 같고 진척이 안 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정책을 네 가지로 본다면 창조경제, 규제개혁, 서비스산업육성, 공공개혁이라고 본다. 서비스산업 육성은 기존 산업을 확대하자는 것이고, 창조경제는 새로운 사업을 만들자는 것, 공공혁신은 공공부문을 키우자는 것으로 어젠다 세팅은 잘됐다. 그러나 어젠다 세팅을 추진할 정치권과 관료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몇 달 지나니까 물 건너간 것 아니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실천인데 실천은 공무원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정치인, 기업인, 국민들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좋은 계획, 부진한 실적이다.”

-최근 전경련이 낸 규제개선 자료를 보니 황당한 규제가 아직도 많더라. 규제개혁 회의 이후 변화가 있었나.

“규제개혁 장관회의 끝나고 나서 희망이 보여 기업들이 규제 사례를 엄청 많이 갖고 왔다. 전경련에 접수된 게 1300건이고 그중 선별해서 628건을 정부에 건의했다. 예전에는 전경련에서 규제 사례를 모으려 해도 힘들었는데 대통령이 중심을 잡으니까 이렇게 호응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잘 반영될지는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정치권과 관료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론’이 번역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서 공감을 얻는 것은 부의 세습을 통해 몸집을 불려온 우리나라 재벌 행태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대기업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토마 피케티 교수의 이론은 표본 자체가 편향돼 있기 때문에 신빙성은 없다. 소득불균형이 됐다고 해서 있는 사람에게 빼앗아서 없는 사람에게 준다고 균형이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낮은 사람의 소득을 올리는 정책을 써야지, 세금으로 빼앗아 주는 것은 정부 지원이지 그 사람의 소득이 아니다. 시장에 의한 저소득층 소득 확대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세금에 의한 분배정책을 쓰게 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극단으로 간 게 사회주의 국가들인데 다 실패하지 않았나. 공급확대 정책을 통해 저소득층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줘서 불균형을 해소하도록 해야 한다.”

만난 사람=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이 부회장은 전경련 상무, 전무를 거쳐 지난해 2월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했다. 대기업 출신이 아닌 내부에서 승진한 것은 27년 만이다. 남들이 "당신은 부회장이 다섯 번 바뀌고 회장이 다섯 번 바뀌는데 어떻게 계속 승진하느냐"고 묻는다고. 그의 답은 솔직함이다. 상사가 무슨 얘기를 할 때 숨김 없이 솔직하고 시원하게 얘기해주는 게 장수비결이란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도 그는 상사가 아니라 지도교수라고. 그가 목표로 하는 전경련은 '종합정책상사'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조직이 돼 이해관계자들, 정책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좋은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20대 때는 순복음교회를 개척해 성전도 짓고 침례교회도 확장할 정도로 열렬 크리스천이었다고. 직원들과 대학로에서 뮤지컬 '평양마리아'를 보거나 주말에는 직원들과 자전거나 스키를 타며 스스럼 없이 어울린다. 스쿠버다이빙에도 능한 만능 스포츠맨.

△1959년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석·박사학위 취득 △1990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999년 전경련 기획본부장 겸 지식경제센터 소장 △2003년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상무) △2007년 전경련 전무 △2013년 2월∼ 전경련 상근부회장 △2014년 1월∼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공동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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