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성장해야 할 건 자아가 아닌 세계죠” 기사의 사진
중편 신작소설 ‘가마틀 스타일’을 펴낸 작가 배명훈. 그는 “어른들은 항상 우리에게 변해야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세상이 우리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접근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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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배명훈(36)은 우리 문단의 정통 코스를 밟지 않았다. 예컨대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지 않았다. 그는 2005년 SF소설인 ‘Smart D’로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부문에 당선됐다. SF소설은 장르소설로 여겨져 문단에서는 잘 쳐주지 않는다. 장르문학으로 데뷔한 그에겐 SF소설 작가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이후 발표작도 기성작가들의 작품과는 달랐다. SF적인 발랄한 상상력에 인간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 그의 작품은 비관적이거나 심각하지 않았다. 애써 작가의 고뇌를 포장하지 않았다.

차츰 기성문단에서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데뷔 5년 후인 2010년 ‘안녕, 인공존재!’로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대표작 ‘타워’ ‘안녕, 인공존재!’ ‘신의 궤도’ 등으로 탄탄한 팬층을 갖게 됐다.

배명훈의 신작 소설 ‘가마틀 스타일’(은행나무)이 25일 나왔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국민일보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1년 예정으로 미국 뉴욕으로 곧 떠난다고 했다. 맨해튼에 머물며 글을 쓸 예정이다. 017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쓰는 그는 요즘 보기 드문 폴더폰을 만지작거렸다. 굳이 스마트폰으로 바꿀 이유가 없었단다.

‘가마틀 스타일’에서 작가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여전하다. 전작에 비해 대중적이어서 빠르게 읽힌다. 분량은 원고지 350자 정도. 단편의 기교와 장편의 묵직함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분량이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경장편(중편) 시리즈인 ‘노벨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제가 이 시리즈를 제안했어요. 길이가 애매해 갈 데 없어 1년 이상 묵혔던, 맘에 들었던 글이죠. 아끼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인공지능이 있는 로봇. 중무장한 전투로봇 중 한 대인 ‘가마틀’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직한 테러공격 중 대열을 이탈해 사라진다. 특별조사관 민소와 공학자 은수는 행방불명된 가마틀을 추적한다.

그는 “인간성을 갖게 되는 로봇 이야기는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많은 작가들이 이 문제를 붙들고 있다는 건 인간성의 문제가 그만큼 중요한 주제라는 뜻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래서 중요한 건 기계가 인간성을 갖게 되는 순간의 경이로움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기계가 인간성을 갖게 됐는가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아를 찾아가는 가마틀의 이야기를 성장소설로 부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성장해야 할 것은 자아가 아니라 세계”라는 것이다.

배명훈은 서울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는 “내 소설에 가장 영향 준 것은 바로 전공”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정치학에서는 개인보다 세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 소설에선 인물보다는 세계가 중요하고, 세계가 인물에 맞춰 변한다. 국제정치학은 사회에서 써먹기 힘든 학문인데 난 정말 잘 살리고 있다”며 웃었다.

대학 동기들은 주로 대기업, 연구소 등에 있다. “졸업 후 회사도 다녔는데 그때가 더 불안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이 갖고 있다. 1년에 장편 하나씩을 쓸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더 낫지 않을까하는 확신이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전업 작가로 살아남기 힘든 시대. 원고지 장당 1만원 받는 수입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된다. 그는 “문단에선 많이 버는 편인데 밖에 나가면 달라진다. 돈 잘 못 버는 자영업자가 된 기분”이라며 웃었다. “번역이나 강의 제의를 종종 받지만 안하려고 애쓴다. 다른 일과 병행해서는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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