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4월 16일 이전이나 이후나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눈 감고도 애국가를 부를 줄 안다. 그러나 2절→3절→4절로 갈수록 가사가 흐릿해지고 희미해진다. 애국가를 1절만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인간의 기억엔 한계가 있다. 평생 유지되는 기억이 있으면 금세 잊히는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심리학에서는 전자를 장기기억, 후자를 단기기억이라고 한다. 기억 용량과 기억 시간의 한계 때문에 쉽게 잊혀지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려면 되새김을 반복해야 한다. 학습효과다.

통곡의 100일이 흘렀다. 우리는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수 없이 다짐했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온갖 적폐를 청산하고 원칙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그래야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원칙은 거저 지켜지는 게 아니다. 적잖은 불편과 희생이 따른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우리는 300여명의 무고한 희생을 목도하면서 기꺼이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서약했다. 그러나 시나브로 ‘원칙은 멀고, 불편은 가깝다’는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금지 조치는 승객의 안전을 위한 것임에도 “불편하다”는 승객들의 거센 반발로 원칙이 위협받고 있다. 버스 증차 등 세밀한 준비 없이 시행에 들어간 교통 당국의 졸속행정은 비판받아 마땅하나 생명에 우선하는 것은 없다. 그런 일은 절대 없어야겠지만 행여 입석버스에서 대형 인명사고라도 발생하면 우리는 또 원칙 타령을 할 게 틀림없다. 정부가 이달부터 시행하려던 과적차량 선적 제한도 화물운송 업계의 반발로 보류된 상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태백 열차 충돌 사고를 비롯해 인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다 원칙을 지키지 않아 빚어진 사고다. 국가를 개조·혁신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언이 무색하다. 오히려 비정상이 더욱 굳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권력의 무능은 그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구조에도 허둥지둥 허술하기 짝이 없던 경찰은 수사에서도 엉망진창이었다. 보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지휘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해양경찰청뿐 아니라 경찰청도 해체해야 할 판이다.

검찰이라고 다르지 않다. 백골이 된 유병언을 잡겠다고 유효기간 6개월짜리 구속영장을 들어 보이며 추적 의지를 불태운 검찰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검찰 내부는 “경찰이 사전에 귀띔만 해줬어도 이런 개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 같다. 수사권 독립 문제로 검찰에 쌓인 게 많은 경찰이 검찰 물 먹이려 그랬다는 설도 나돈다. 도려내야 할 적폐의 하나인 조직이기주의다.

이렇듯 국가 개조는 시급하고 절박한데 그 작업은 첫발도 못 떼어 보고 표류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정부조직법, 김영란법, 유병언법 등 세월호 참사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해 대통령과 정치권이 약속한 어느 것 하나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거듭된 인사 참사로 리더십에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정치권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주느냐 마느냐로 싸움박질만 일삼고 있다. 중심을 잡아야 할 대통령과 정치권이 구심점 역할은 고사하고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나라가 어수선하다.

세월호 유족의 국회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어설프기만 한 검·경 수사와 사실상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정부와 국회의 행태를 보면서 ‘나라의 역량이 이것밖에 안 되나’하고 자괴감을 쏟아낸다.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고 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흐른 지금 대통령의 눈물이 한갓 감상주의의 산물이 되려 하고 있다. 얼마나 더 큰 사고가 터져야 정신을 차리려는지 짜증스러운 요즘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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