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서윤경] 휴가 다녀오셨습니까 기사의 사진
‘한 달 월급은 포기해도 여름휴가는 포기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직장인들에게 여름휴가는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말 방송된 MBC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방콕 특집’ 편은 휴가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을 바꿨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노홍철 등 무한도전 멤버들은 바캉스 시즌을 맞아 방콕으로 휴가를 떠난다는 제작진의 말만 믿고 인천공항에 여행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방콕’이란 단어가 갖고 있는 이중적 의미다. 방콕은 태국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방에서 콕’이란 뜻을 가진 신조어이기도 하다. 휴가 때 어딘가 떠나지 않고 방에 콕 박혀 보낸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멤버들에게 말한 방콕은 후자였다.

가정집 옥탑방에 태국식 인테리어를 한 뒤 태국이라 우기는 제작진 때문에 멤버들은 불평이 가득했다. 하지만 옥상 마당에 준비된 어린이용 풀에서 물놀이를 하고 수족관에 있는 해산물을 입으로 건져 저녁거리 재료로 사용하는 등 그들의 몸개그에 시청자들은 방송이 끝난 뒤 뜨겁게 반응했다. 엉뚱한 도전을 일삼던 과거 모습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와중에 ‘방콕’의 진정한 의미에 주목한 이들도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비싼 돈 들여 고급 리조트나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음을 이들이 보여줬다는 것이다. 실제 멤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작진을 원망하기보다 ‘재미있다’ ‘즐겁다’고 했다.

지난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를 떠났다. 지난해 여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경남 저도에서 휴가를 보냈던 박 대통령이 올해는 청와대 관저에서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방콕’이다. 과거에도 대통령들이 휴가 기간 ‘방콕’을 한 경우가 있었다. 모두 사회적 여론이 좋지 않거나 현안이 산적했을 때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경기도 파주·연천 집중 호우로 청남대 휴가지에서 급히 돌아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총리 인준안이 부결됐을 때 휴가 자체를 떠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2004년 탄핵정국, 2006년 북한 미사일 발사,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등의 사건으로 5년 임기 동안 세 차례나 청와대 관저에서 휴가를 보냈다.

박 대통령의 ‘방콕’ 이유도 다를 바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휴가를 떠나는 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이 ‘방콕’을 할 때 정부와 민간단체, 기업들은 여행을 떠나자며 외치고 있다. 다른 듯 같은 이유였다. 세월호 참사로 위축된 소비심리와 침체된 국내 관광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이었다.

지난 15일 15개 관계부처, 지방자치단체, 경제단체가 합동으로 ‘국민행복과 내수활력 제고를 위한 하계 국내여행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고용노동부, 환경부와 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는 하계휴가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에 나섰다. 기업들도 국내 여행을 권장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고,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하계휴가 국내에서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나는 게 불편하다면 이런 식의 여행은 어떨까.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자’며 매주 목요일 전남 진도로 떠나는 서울시 자원봉사단들의 희망여행 말이다. 무한도전 방콕 특집편이 웅변하듯 진정한 휴가는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떠나며 여행지에서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하니까.

서윤경 문화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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