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교 칼럼] 120년 전 역사가 말해주는 것 기사의 사진
120년 전인 1894년, 새해부터 동학농민운동의 불길이 번지자 조선 조정은 이를 어쩌지 못해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이에 청이 군대를 보내온 것은 물론 일본까지 조선에 파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1884년 갑신정변 뒤 청·일 양국이 맺은 톈진조약에 따른 것이었다. 조약은 조선에 변란이 있을 때 어느 한쪽이 군대를 보내면 다른 한쪽도 자국민 보호를 위해 파병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뒤 동학농민군은 진압됐지만 양국 군대는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조선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을 계속했다. 일본은 그해 7월 23일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한다. 이틀 뒤인 25일에는 아산만 풍도(안산 대부도 부근) 앞바다에서 청 전함을 기습 공격한다. 청일전쟁(중국명 갑오전쟁)의 시작이었다. 일본은 이어진 육전과 해전에서 연전연승, 청을 제치고 아시아의 주도권을 쥐기에 이른다.

청은 ‘아시아 최강’이라던 북양함대를 앞세웠지만 전시동원체제 아래 온 국력을 쏟아부은 일본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청은 부패했고 청군은 만주족과 한족 간 갈등으로 분열돼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조선은? 하소연할 데도 없이 전쟁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꼴이 됐다. 나라 곳곳이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지 나락에 떨어지는 단초는 당시 잉태됐다.

중국 국영 CCTV 국제 채널은 지난 29일 밤 인민해방군 육해공군이 갑오전쟁 12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벌이는 상황을 심층 보도했다. ‘오늘의 관심 이슈’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눈길을 끈 것은 “3군 4해 훈련을 하고 있다”면서 “미·일도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이었다. 이번 훈련이 미·일을 겨냥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3군은 육해공군, 4해란 발해·서해(황해)·동중국해(동해)·남중국해(남해)를 가리킨다. 해군의 경우 북해·동해·남해 3개 함대 모두 훈련에 들어갔다. 육군은 7대 군구(軍區) 가운데 6대 군구가 동원됐다. 훈련 참가 육군 병력만 2만명이다. 공군도 중국 동·남부 일대에서 훈련 중이다. 유례없는 규모로 거의 중국 전역에서 훈련이 진행되는 셈이다. 모든 훈련에서는 실탄을 사용해 실전을 방불케 한다.

4해에서 동시 훈련에 돌입한 것도 의미가 있다. 발해와 황해는 갑오전쟁 당시 일본군에 무참히 패했던 해역이다. 동중국해에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가 있다. 남중국해는 베트남 등과 갈등을 빚는 곳이다.

중국은 지금 온통 “갑오전쟁의 굴욕을 잊을 수 없다”며 “이제 120년 전과는 다르다”는 분위기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갑오전쟁을 계기로 중국인들은 각성했다”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69년 만에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의 길로 들어섰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조선에 군대를 보냈던 것처럼 구실만 있으면 한반도 재진출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일본과 힘을 합해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느라 바쁘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120년 전 갑오년과 흡사하다. 당시는 일본이 우위에 있던 중국을 무릎 꿇게 했다면 지금은 중국이 미·일에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다. 두 세력이 부딪치는 중심에 한반도가 자리 잡고 있는 지정학적 구도는 그대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보다는 우리 국력이 나아졌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일깨워준다. 한·미 동맹 또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견고함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표현되는 한·중 사이의 끈끈함도 강대국의 국익 논리 앞에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고. 이제 우리는 시대를 관통하는 국가경영전략을 생각해야 할 때다. 그 요체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이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눈앞의 현안에 매몰돼 멀리 내다볼 겨를조차 없는 대통령 5년 단임제로는 턱도 없다.

정원교 논설위원 wkc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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