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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이지현] 고독을 잃어버린 세대

[삶의 향기-이지현] 고독을 잃어버린 세대 기사의 사진
“에너지가 고갈돼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아요. 마치 수명이 다 된 건전지 같아요.” “매일 장황하게 계획을 세우지만 반복되는 실패로 좌절감만 느껴져요. 제 삶이 이대로 끝날 것만 같아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기력과 탈진을 경험한 사람들의 말이다. 일에 치여 바쁘게 살다 보면 차분히 생각할 여유, 자신을 추스를 시간조차 갖기 어렵다. 그러나 막상 혼자가 되었을 땐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습관적으로 텔레비전 전원을 켜거나 엄지족이 되어 스마트폰에 매달려 고독의 시간을 허망하게 날려 버린다.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르다. 외로움이 소외에 따른 고통이라면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이다. 고독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능력이며 재미다. 그러나 내면이 가난한 사람에게 고독은 외로움과 동의어다. 혼자서 잘 논다고 고독을 즐기는 능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고독에는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고서는 고독을 향유할 수 없다.

삶이 방전됐다고 느낄 때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이기는 능력을 잃었다’는 것이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대인들이 혼자서 고독을 누리거나 사색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고독을 즐기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성장이 이루어지는데 우린 이런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중력은 홀로 있을 때 높아지고, 위대한 생각 역시 사색 속에 꽃핀다. 자신과 오롯이 마주할 때 비로소 성찰을 한다. 우린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예수님은 고독을 피하지 않으셨다. 고독을 인생 여정의 동반자로 삼으셨다. 그런 까닭에 자주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셨다. 산에 올라가 홀로 기도하였고 빈들에서 홀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다. 예수님은 고독 속에 침묵하셨고 고독 속에 깊은 언어를 가꾸셨다.

분주한 삶 속에서 고독의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고독은 외로움의 고통 너머에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 속에 들어가는 길이다. 영적인 성장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 “침묵은 또 다른 언어입니다. 침묵 안에 또 다른 자유함이 있습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패스워드입니다.” 얼마 전 다녀온 한 영성수련원 식당에 붙여진 글귀다. 그곳은 매주 수요일 침묵으로 점심식사를 한다고 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과 밥상을 위해 수고하신 분들에게 감사하며 침묵 속에 식사한 경험이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침묵 속의 쉼은 내가 앞으로 가야 할 지점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침묵이란 패스워드

아직 세상은 비통함과 슬픔 속에 출렁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 쉼 속에 영적인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모세에게는 시내광야, 예수님에게는 유대광야, 다윗에게는 그가 10년간 살았던 여러 광야가 있었다. 이 광야는 지리적인 실재인 동시에 영적인 은유이다. 이 광야를 호락호락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곳은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광야를 회피해서도 안 된다. 그곳은 참으로 경이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나름의 고독한 광야의 시간이 주어진다. 우린 그곳을 통해 ‘언제나 사랑해왔지만 잠시 잃어버렸던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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