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기석] 나는 저항한다 기사의 사진
프랑스 남부의 도시 리옹에 있는 ‘이산과 저항의 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이 박물관은 1987년 열린 클라우스 바비(Klaus Barbie)에 대한 전범 재판이 계기가 돼 설립됐다. 바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리옹에 주둔하던 독일 비밀경찰의 책임자였는데, 제3국으로 도피해 살다가 뒤늦게 체포돼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87년 5월 11일 리옹에서 시작된 이 재판에서 검찰은 43년부터 44년 사이 그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저지른 수많은 반인륜적 행위들을 피해자들의 증언과 함께 제시했다. 배심원들은 ‘리옹의 도살자’라고 불렸던 그에게 유죄를 평결했고 재판관들은 종신형을 선고했다. 당시 바비는 74세였다.

인간의 위대함은 저항에 있다

바비 재판은 많은 사람이 잊고 있었던 아픈 기억을 되살려냈다. 이 박물관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던 거리 옆, 나치 게슈타포 본부가 있던 곳이야말로 박물관이 들어설 자리로 제격이었다. 92년 10월 15일 개관식에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엘리 비젤도 참여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후 평생을 그 폭력의 역사를 증언하는 일에 바친 사람이다. 위르겐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비젤의 책 ‘흑야(Night)’에서 촉발되었음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저항’에 있다. 이 박물관은 부자유와 인간성에 반하는 일이 강요됐지만, 억압이 가중될수록 저항도 가열차게 전개됐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 길들여지기를 거부한 채 단호히 정의의 길을 선택한 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여전히 전체주의의 먹구름 아래 있을 것이다. 신동엽은 먹구름을 하늘로 알고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쇠 항아리,/그걸 하늘로 알고/일생을 살아갔다.//닦아라, 사람들아,/네 마음 속 구름/찢어라, 사람들아,/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아침저녁/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볼 수 있는 사람은/외경(畏敬)을/알리라(‘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부분).”

감동과 회오가 부끄럽게 교차했다. 여전히 친일파의 후손들이 득세하는 우리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 일은 반드시 되돌아와 우리 삶을 짓누른다. 박물관을 돌아 나오는데 직원 한 사람이 어디에서 왔냐고 묻더니 이 도시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면서 브로슈어 한 장을 내밀었다. 박물관을 간략히 소개한것이었는데 어떤 시인의 말이 인용돼 있었다. “손으로 벌을 눌러 죽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벌도 그냥 죽지는 않을 겁니다. 반드시 당신을 쏠 겁니다. 당신은 별 문제 아니라고 말하겠지요. 그래요, 그건 사실 별 문제가 아니지요. 하지만 벌이 당신을 쏘지 않았다면, 벌들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강력한 메시지 아닌가?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악에 협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관심은 곧 악에 협력하는 것

박물관 밖에는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총신이 엿가락처럼 휘어 고리 모양을 이룬 권총이 형상화돼 있었다. 작가가 꿈꾸는 세상, 전쟁과 폭력 그리고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은 아직 요원하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불의에 끊임없이 저항하되 자기 속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미움에 지고 말면 평화는 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하다 하여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 누구든 자기에게 동화시키려 하지 않는 사람, 서로의 다름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사람, 다른 이들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살아가려는 이들이야말로 평화의 일꾼이 아니겠는가.

김기석 청파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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