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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재만 (3) ‘불신자’ 우리 부부를 교회로 인도하신 힘은?

불교에 심취했던 아내 먼저 구주 영접 새벽기도 운전기사 역할하다 나마저도

[역경의 열매] 이재만 (3) ‘불신자’ 우리 부부를 교회로 인도하신 힘은? 기사의 사진
이재만 변호사가 자신을 신앙의 길로 인도한 아내 조향씨와 함께했다. 이 변호사는 결혼 초 아내와 함께 절에 다녔던 불교신자였다.
회색빛 시대에서 7전8기를 거쳐 합격을 하자 새로운 희망이 보였고 못다한 꿈을 펼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법연수원생 297명의 자치회장직을 맡았고 수많은 법 동아리 활동, 판검사 시보생활 등으로 매우 바빴다.

마음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슬픔이 너무나 컸다. 아버지는 창을 잘 하시고 친구를 좋아하는 한량이셨다. 그런 성격을 이어받았는지 물 흐르는 대로 구름 가는 대로 살기 좋아하는 나는 동생을 잃은 후에는 더욱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노모는 결혼을 성화하셔서 후배 변호사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나의 허전함과 슬픔을 지혜로운 아내가 채워줄 것 같아서 결혼했고, 결국 나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해준 이는 아내다.

아내는 원래 크리스천이었는데 대학에서 고전무용을 가르치면서 민속학을 연구하다 민속종교를 믿었고 불교에 더 심취하게 되었다. 그러던 신혼시절, 처갓집의 경제적인 큰 어려운 사건 때문에 시댁의 도움을 받으니 자존심이 강하고 완벽주의자인 아내가 매우 힘들어했다. 시댁에서 아내를 위로하고 심지어 아내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신경 쓰고 있던 차에 아내와 형제처럼 지내는 크리스천인 손위 시누이가 새벽기도를 권했다.

아내는 매일 새벽마다 집을 나갔다가 들어왔다. 나는 아내가 새벽마다 나가는 것을 전혀 몰랐는데 어머니는 새벽잠이 없으셔서 며느리가 새벽마다 집을 나가는 것을 알고 계셨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으니 며느리가 새벽기도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셨다고 한다.

평생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여, 며느리를 위하여 평생 믿어 온 자신의 종교와 다른 종교를 믿으려는 며느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후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크리스천으로 개종케 할 줄 그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그 후 크리스천이 되신 어머니는 많은 목사님들의 기도속에서 편안히 영면하셨다.

아내는 그렇게 예전의 신앙을 기억하고 주일이면 서울 동부이촌동 충신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다니던 어느 겨울날 아내는 내게 “너무 춥고 어두워서 무서우니 새벽기도 나가는데 차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새벽기도 운전기사가 되었다. 아내는 새벽기도만 다녀오면 얼굴에서 평안함이 가득해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좋아 매일같이 아내를 교회로 데려다주고 교회 밖에서 새벽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사들고 차 안에서 신문을 보며 일과를 시작했다.

기독교인이 아니고 불교도인 내가 매일 아내의 새벽기도를 돕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때때로 아내는 나의 피곤을 풀어준다면서 안마를 해주고 발마사지를 정성껏 해주면서 찬송가와 설교 테이프를 틀어주었다. 1년이 지나자 찬송가와 설교 말씀이 귀에 익어갔다. 어떤 날은 구두 닦는 분에게 구두 닦는 비법을 배워왔다며 내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놓기도 하였다.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게 겨울,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1998년 한 해를 마감하는 1998년 12월 31일이었다. 아내는 이날 내게 저녁예배에 함께 참석해 보자며 처음으로 운을 뗐다. 새벽기도를 바래다 준 지 1년이 지난 때였고 그날은 송구영신 예배였다. 성악가들의 찬송을 듣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충신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다. 그해 초봄 아내는 내게 이번 주일에는 양복에 넥타이를 한 정장차림으로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무심코 그러마고 했다.

그날 예배시간에 박종순 담임목사님이 오늘 새로 등록한 교인이 있다고 발표를 하는데 갑자기 나를 호명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어서 일어나 인사하라기에 얼떨결에 일어나 인사를 하니 전 교인이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그렇게 난 충신교회 등록교인이 되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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