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폭력과 관행의 고리 끊어라! 기사의 사진
25년 전 군목으로 임관해 최전방 부대에 배치 받았다. 부대장 신고를 하고 처음으로 받은 임무는 사단 영창으로 면회를 가는 것. 낯선 곳에서 참 불편한 만남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갓 이등병을 달고 온 신병이 참 이상한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죽을 생각에 화장실 구덩이에 뛰어들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는지 허우적대는 그를 고참들이 건져냈다. 그리고 ‘관심사병’이라는 딱지를 단 신병이 사단 영창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군대에서 소위 ‘고문관’이었던 이 청년은 친절한 설명과 따뜻한 도움의 손길보다 고참들의 주먹질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며 사고위험군에 속해 있던 이 신참은 군교회에서 군목이던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밤 12시가 넘어 울리던 ‘드르륵 드르륵’ 군대전화 소리는 늘 내 심장을 뛰게 했다. 네 번씩이나 자살을 알리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군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고 예방이었고 지휘관의 가장 큰 관심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구타를 근절하기 위해 참 많은 교육과 소원수리 그리고 급작스러운 내무반 검열이 있었지만 구타 사고는 사라지지 않았다. 28사단에서 일어난 윤모 일병 구타사망 소식을 접하는 오늘도 달라진 것이 없다. 4월 7일 윤 일병 사망 후 전군에 가혹행위를 조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보고된 사건이 4월 한 달 동안 근 4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가학증인가, 권력 남용인가

군대를 경험한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맞아본 경험이 있고, 맞을 때 한번쯤 결심도 한다. ‘내가 고참이 되면 절대로 때리지 않으리라!’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고참이 되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신분이 바뀐다. 윤 일병과 함께 생활관에서 지낸 가해자 역시 한때는 모두 피해자였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가학적 쾌락 욕구가 있다고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주는 행위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게 있는 권력에의 의지는 아주 미세한 차이에서 권력을 행사하므로 더 큰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인간에게 욕구가 있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욕구대로 사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인간이 인간되는 것은 우리 속에 욕망을 제어하는 인격이 있을 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서는 수용된 유대인들에게 씻을 물을 주지도, 배설할 장소도 마련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군의 눈에 유대인이 짐승처럼 보여야 죽여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타 사고 근절을 위한 시도는 반복되는 시행령과 감찰로도 없어지지 않았다. ‘징병제’로 군 생활을 마쳐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선임병과 후임병은 인격의 만남이 아닌 단순한 계급적 관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격은 설득하고 설명하지만 비인격체에게는 강요와 명령이 있을 뿐이다. 일이 되기 위해 필요하다면 때려야 하는 이유를 만든다. ‘맞아야 움직이고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맞았던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당화한다. 그렇게 이 세상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권력의 의지를 미화한다.

섬김으로 세상 바꿔나가야

이러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세상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반기를 드신 분이 예수님이다. 절대로 폭력과 권력으로 나아지지 않는 세상에서 섬김과 십자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공동체가 교회다. 하나님의 형상에 중독된 사람만이 관행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인격으로 보기 시작할 때, 작은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섬김이라고 생각할 때 폭력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까? 그런 군대에 나도 아들을 보내야 한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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