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라이언 일병’ 못 구하는 나라 기사의 사진
단 한 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1만여㎞를 날아 미국 조지아주 도빈스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대기하던 구급차는 경찰차들의 호위를 받으며 24㎞를 달려 애틀란타 에모리대학병원 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도착했다. 미국 NBC방송 여기자의 리포트처럼 뜻밖에도 구급차에서 들것에 실린 환자가 아니라 멀쩡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우주복 같은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구급 요원에 의해 격리된 병실로 안내된 사람은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를 치료하다 전염된 켄트 브랜틀리 박사다. 브랜틀리 박사의 아내와 5살, 3살 된 자녀들은 TV 생중계를 통해 수송 장면을 지켜봤다.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에 라이베리아에 의료봉사를 갔다는 그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을 돌보다 지난달 쓰러졌다.

미국 정부는 반발 속에도 “에볼라 감염자도 미국 국민”이라며 브랜틀리 박사의 송환을 강행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몇 개 부대 수십명 병사를 투입해 적군에 붙잡힌 단 한 명의 자국민 포로를 구해내고 전직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해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을 구해내는 나라가 미국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든든한 국가가 있다는 자부심에 미국인들은 분쟁지역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지로 뛰어든다.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은 국가의 존재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자국민 보호는 헌법이 규정한 국가의 의무다. 국민들은 국가가 울타리가 돼 주리라는 믿음으로 납세의무와 병역의무를 기꺼이 진다.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멀쩡한 아들이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갔다가 구타로 숨지거나 폭력을 못 견뎌 자살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작 싸워야 할 적은 밖에 있는데 동료 병사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대가 정상인가. 몇몇 병사들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중증이다. 그렇게 숱한 총기난사 사건과 구타사망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구조적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있어서는 안 될 사고로 귀한 자녀를 잃은 부모님과 유가족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참담하다”고 했다. 몇 달 전에도 비슷했다. “온 국민이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비통함을 함께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세월호 참사 한 달여 뒤인 5월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들은 이제 진정성을 의심한다. 지금 당장은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만들고, 병영 내 휴대전화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윤 일병 사건도 몇 달 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혀지리라는 걸 안다. 300여명을 눈앞에서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그랬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총리를 도로 주저앉히더니 세월호 사건 진상조사는 넉 달이 다 돼가도록 지지부진하다. 국가 대혁신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물 건너갔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관피아 철폐를 외치더니 대선 공신이나 자기 사람을 내려꽂는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윤 일병 사건도 ‘일벌백계’ 운운했지만 육군참모총장 한 사람 옷 벗는 것으로 끝낼 모양이다. 군에 입대했거나 입대할 아들을 둔 부모들은 밤잠을 설치는데 대통령에겐 여전히 남의 일이다.

박 대통령이 그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명량’을 관람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400여년 전의 이순신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순신은 일개 종사관에게 “죽지 마라. 명령이다”, “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며 부하들과 백성들을 살뜰히 챙겼다. 그러면서도 도망가는 장수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규율과 원칙에 엄격한 리더였다. ‘원칙과 신뢰’가 트레이드마크였던 대통령의 이율배반이 그래서 더 슬프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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