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한 삼태기 흙 기사의 사진
지난 재·보궐선거는 야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의 득표율은 대체로 50%를 웃돌았고, 접전지로 예상되어 관심을 모았던 서울 동작을 역시 새누리당이 승리를 거두었다. 여당이 11곳의 승리를 거둔 데 비해 야당은 겨우 4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차기 대선의 잠룡으로 거론되던 거물급 야당 정치인들도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특히 전남 순천·곡성에서 거둔 이정현 의원의 승리를 두고 여당은 ‘일대사건’이라 일컬으며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의 오랜 텃밭에서 거둔 뒤집기 승리인 데다 해당 당선자가 얻은 득표수도 결코 적지 않기에 사뭇 축제 분위기인 여당에 비해 야당은 적잖이 낭패감과 상실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번 재보선은 향후 우리나라 정치 지형도의 변곡점이 될 것 같다. 올봄 지방선거에서 새민련 김부겸 후보가 지역주의 타파의 기치를 내걸고 대구에서 고군분투하였으나 소기의 결과는 얻지 못했다. 강고한 지역주의의 벽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오랜 바람은 정작 이번 순천·곡성에서 첫 결실을 맺었다.

이정현 의원의 당선은 지역주의 타파 외에도 주목할 점이 있다. 해당 지역 유권자들이 정당의 공천 과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야당은 지역 민심을 무시하고 쉬운 승리를 위해 중앙당의 전략과 의지대로 공천을 밀어붙였다. 지역 민심은 그 비민주적 처리 과정에서 이미 등을 돌렸다.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은 이제 정당이나 정치인이 내거는 거대한 구호뿐만 아니라 절차의 민주주의와 같은 작지만 실질적인 의미를 띠는 지점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선거 전략이다. 언론이나 소셜네트워크 등에 전하는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민련은 선거 내내 정권 심판과 세월호 이야기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들은 지역 국회의원이면 무엇보다 먼저 지역 민심과 지역 경제를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기본 사항을 간과한 것이다. 국가 정치의 향방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방 선거에서 해당 지역민들에게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삶과 그 터전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 반면 이정현 후보는 선거 공약을 분명히 하였고, 구체적인 정책을 들고 지속적으로 지역민들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순천·곡성의 지역민들이 그를 지지해준 것은 예산폭탄과 같은 자극적인 공약에 순진하게 넘어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과 그 터전을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을 뿐이다.

민심은 결코 쉽지 않다. 옛날 무왕이 주나라를 세웠을 때 주변 나라에서 거대하고 영리한 개를 조공으로 바친 일이 있다. 무왕을 보좌해 주나라 건국에 일등공을 세운 소공은 조공을 받지 말라고 조언했다. 대신 덕정을 권유하는 충언을 올렸는데, 그때 소공이 무왕에게 덕정의 첫째 조건으로 올린 경계가 완인상덕(玩人喪德), 곧 사람을 우습게 보면 덕을 잃는다는 말이었다. 새민련은 후보 공천과정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우습게 봤고, 선거 과정에서 지역 사람의 민심을 우습게 보았다. 참담한 패배는 그 오만의 결과이다.

새민련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편치 않은 곳이 한 군데 있다. 전략공천 과정에서의 무리한 밀어붙이기는 물론이고 남편의 재산신고 축소 의혹에 이르기까지 7·30재보선에서 줄곧 세인들 입에 오르내렸던 광주 광산을 지역구이다. 광주는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은데도 이번 재보선에서는 15곳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 역시 새민련 지도부의 비민주적인 구태와 무관하지 않다. 광주시민은 새민련 후보자를 마지못해 선택해 주기는 했지만 결국 진짜 마음은 주지 않은 형국이다. 새민련으로서는 무작정 웃을 수만은 없는 개운치 않은 승리이다.

다시 무왕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무왕이 천하 경영의 첫걸음을 뗄 때 소공은 또 이렇게 충고하였다. “아홉 길이나 되는 높은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 사업이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소공의 말에 감동 받은 공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평지에 처음 부은 한 삼태기의 흙은 보잘것없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양이라 할지라도 도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큰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홉 길이나 되는 높은 산을 거의 다 만들고도 마지막 한 삼태기 흙을 붓지 않았다면, 그 한 삼태기 흙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미흡한 것이다.”

새민련은 당명에서 ‘새정치’와 ‘민주’라는 두 개의 커다란 기치를 내걸었다. 둘은 한국사회의 오랜 바람이며, 동시에 지난한 과제이기도 하다. 새민련의 노력과 분투가 우리 국가 전반은 물론이고 정치 발전에 있어서도 기여한 그 공로가 현재 국가를 경영하고 있는 새누리당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다. 그야말로 아홉 길 높은 산에 버금간다 하겠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새민련은 자신이 당명에서 내건 정신을 스스로 놓치고 말았다. 한 삼태기 흙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규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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