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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서승원] 도쿄에 日帝희생자추모공원을

[글로벌 포커스-서승원] 도쿄에 日帝희생자추모공원을 기사의 사진
서승원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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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본(Bonn)대학 일본·한국전공 교수들과의 워크숍 참석차 독일에 다녀왔다. 워크숍이 끝난 뒤 내친김에 동료들의 등을 떠밀며 베를린으로 향했다. 독일이 패전 후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주변 국가들과 성공적인 화해를 달성한 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베를린 체재는 단 이틀. 시간적인 여유가 그다지 없어 베를린장벽 국립역사박물관 유대인박물관 그리고 베를린 교외에 있는 작센수용소 등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지만 게걸스럽게 발바닥을 괴롭혔다. 그러다 베를린 중심부 브란덴부르크 문 근방에 이르러 발걸음을 한동안 뗄 수 없었다. 유대인학살추모공원이었다.

거의 2만㎡에 달하는 드넓은 공간에 관 모양의 회색 콘크리트 조형물 2711개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바깥쪽 관들은 사람들이 편히 앉을 수 있는 높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면도 서서히 깊어지고 관들 높이도 어른 키 3배정도에 달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흡사 무덤 속에서 무릎을 궤고 앉아 비좁은 하늘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망자(亡者)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관들 틈 사이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언뜻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아직도 묘지를 배회하는 영혼들인가 싶었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싶어도 그들은 향 연기처럼 저편으로 금방 사라져갔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집시학살추모공원과 동성애자학살추모공원도 있었다. 이들 세 기념물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삼면에서 에워싸고 있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 앞의 세종문화회관 교보문고 그리고 조선호텔에 각각 자리한 식이다. 자신의 치부를 용기 있게 드러냄으로써 국제사회의 신뢰를 쟁취한 독일. 생존본능, 심약한 성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학살에 동조하거나 못 본 체한 자들이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등에게 저지른 죄업을 만천하에 고발함으로써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국가권력 집행자들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한 일본 대학 총장의 산케이신문 칼럼을 읽어보고 정신이 까무러치는가 싶었다. 일본인들이 개체(개인)지상주의에 빠져있으며 이는 에고이즘과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격서(檄書). 주장하는 바는 생명지상주의의 복원. 여기서 생명이란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단어가 아닌 국체(國體)를 말한다. 일본은 하나의 국토 위에서 거의 동종(同種)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고립적 언어인 일본어를 구사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종교적 균열도 없는 그러한 연속적인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라는 것. 개인의 죽음을 뛰어넘어 영세를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일왕과 국민을 잇는 유대이며 일왕은 민족 영속의 상징이라는 신도(神道) 강령을 거리낌 없이 휘둘렀다.

보편성이 아닌 자국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에 깊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시 성노예 문제는 한·일 관계 문제이기에 앞서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일본이 아름답고 신성한 나라이기 때문에 성노예 범죄국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는 비뚤어진 사명감부터 버려야 한다. 성노예 강제연행 유무 문제는 결코 과거사 문제의 본질일 수 없다. 독일인들이 버림으로써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면 일본인들은 지키고자 하여 그것을 잃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 8월 15일. 도쿄 한복판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皇居)와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 그리고 국회의사당 앞길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널따란 잔디밭 위에 제국의 권력에 희생된 수많은 국적의 개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영화 ‘명량’을 보면서 느낀 카타르시스보다 그 기념물 앞에서 묵도하게 될 날의 마음이 더욱 북받칠 것 같다.

서승원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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